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의 5남 왕휘지가 풍류인이었다면 7남이었던 막내 왕헌지(王獻之)는 아버지의 재능을 가장 많이 물려받은 서예가였다. 아버지와 그를 묶어 이왕(二王) 또는 희헌(羲獻)이라고 부를 정도로 서예사에 비중이 크다. 자는 자경(子敬). 동진(東晉) 낭야(琅邪) 임기(臨沂) 사람이다. 생몰연도는 348~388, 344~386이 엇갈린다.
그가 회계산(會稽山) 북쪽의 산음(山陰)을 여행하다가 이런 말을 했다. 회계산은 저지앙성[浙江省] 사오싱현[紹興縣]에 있는 산이다. “산음의 길을 가노라면 산과 강이 서로 마주치면서 어우러져 하나하나 볼 틈이 없다. 특히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때에는 마음속의 정회를 표현하기 어렵다.”[從山陰道上行 山川自相映發 使人應接不暇 若秋冬之際 尤難爲懷] 지금은 그 계절이 아니지만 얼마나 멋지면 이런 말을 했을까.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송(宋)나라의 유의경(劉義慶·403~444)이 지은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나온다.
이 멋진 책에 왕헌지에 관련된 유명한 고사가 또 있다. 그는 총명했지만 저포(樗蒲)라는 도박은 잘 알지 못했다. 한번은 몇 사람이 저포 놀이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당신이 지겠소”라고 참견했다. 그 사람이 “이 어린 친구는 대롱으로 표범을 보고 있군” 하고 핀잔을 주었다. 화가 난 왕헌지는 “나는 견식이 넓지 못해요”라고 말하고는 소매를 떨치며 가버렸다고 한다. 대롱으로 표범을 보는 게 관중규표(管中窺豹)다. 그렇게 하면 검거나 흰 부분만 보일 수 있다.
원래 왕헌지가 응접불가라고 말한 대상은 아름다운 산수였다. 그런데 지금은 뜻이 바뀌어 생각할 틈이나 대처할 겨를 없이 바쁘게 사는 것의 비유로 쓰인다. 바쁜 건 좋지만 뭣 때문에 바쁜지 늘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일부분만 보고 전체를 논하는 것도 가소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