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시나트라에게서 배운 것처럼 스티브 잡스는 “밥 딜런으로부터 영감을 얻는다”고 생전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예술인들이 명성을 잃는 것은 처음에 성공한 방식을 고수할 뿐 더 이상 발전하지 않기 때문인데, 밥 딜런은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며 도전해 왔다는 것이다.
밥 딜런의 노래는 미국 법원이 자주 판결문에 인용할 만큼 가사가 일품이다. ‘뒹구는 돌처럼’(Like a rolling stone)에 나오는 “아무것도 없으면 잃을 것도 없다”는 연방대법원이 인용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된 그의 가사는 시대와 공간을 넘어 폭넓은 공감을 자아내는 시적 은유로 이루어져 있다.
시나트라는 청중에게 말을 걸듯 노래함으로써 자신과 청중을 ‘나와 당신들’이 아닌 ‘나와 너’ 또는 ‘나와 우리’의 관계로 만들었다. 쉽고 편한 그의 목소리는 진한 호소력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밥 딜런도 이번 음반에서 감정을 절제하며 힘 들이지 않고 담담하고 편안하게 노래를 불렀다. 그래서 “밥 딜런만이 가능한 재해석으로 원곡에 새로운 빛을 부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지난 5일 열린 ‘따뜻한 콘서트’라는 신춘음악회(이투데이 주최)에서 가수 인순이도 ‘거위의 꿈’과 ‘딸에게’ 등을 호소력 있게 불러주었다. 그는 특히 청중에게 말을 걸듯 편한 자세로 무대 위에 앉아 “좋은 사람이 되기를/고운 사람이 되기를/너의 손길 필요한 곳들에/아낌없이 손 내미는 사람이 되기를” 딸에게 당부했다. 재작년에 낸 책 ‘딸에게’와 맥락이 같은 노래는 열렬하고 아낌없는 갈채를 받았다.
그가 해밀학교라는 다문화학교도 운영 중이니 앞으로 다문화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새로운 노래도 나올 것이다. 이런 ‘삶의 노래’는 구체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거나 진솔한 감성이 담기지 않으면 공허한 너스레가 되기 쉽다.
인순이의 공연보다 사흘 전 방영된 KBS 공사 창립 42주년 콘서트에서 이미자가 들려준 ‘노래는 나의 인생’이야말로 대표적인 ‘삶의 노래’다. 67세인 장사익과 함께한 74세의 이미자는 그 나이에도 여전히 처지지도, 갈라지지도 않은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아무리 ‘이 세상 하나뿐인 목소리’(장사익의 말)를 타고났더라도 성실한 자기 관리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와 밥 딜런은 동갑이다. 성별과 활동무대가 달라도 ‘삶의 노래’로 한결같이 대중과 소통하는 것은 같다.
가수들에게는 저마다 자기만의 노래가 있다. 삶과 감성이 그대로 전달되는 ‘삶의 노래’는 더욱더 자기만의 작품이 된다. ‘마이 웨이’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목소리로 들어야 가장 좋다. 우리 가요 ‘불효자는 웁니다’는 코미디언 김희갑의 노래가 가장 절절하다. 체험의 깊이와 진실성 때문일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우리의 경우 밥 딜런처럼 무르익고 농익은 가사를 스스로 빚어내는 가수가 없다는 점이다.
가수가 아니라도 3월에는 노래하고 싶어진다. 날씨는 겨울로 돌아간 듯 다시 춥지만, 약기운처럼 몸에 듣는 봄을 이미 느낄 수 있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고 자라나 새로운 일생을 펼치는 시기이다. “한 해의 계획은 봄에 세운다”는 말은 밭 고르고 씨 뿌리는 농사의 시작을 말하는 것이다.
‘오, 해마다 봄이 되면/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항상 봄처럼 새로워라./나뭇가지에서, 물 위에서, 둑에서/솟는 대지의 눈./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항상 봄처럼 새로워라’(조병화 ‘해마다 봄이 되면’). 봄이 되면 사람들은 새로워진다.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부르는 노래로 활기를 주고받는 계절이다. 이런 봄에 부르는 노래는 생명의 약동이면서 생의 찬미이며 일에 대한 응원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