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생각] 3월 11일 春雉自鳴(춘치자명) 봄 꿩이 스스로 울어 죽게 되다

입력 2015-03-1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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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겨우내 다리 오그리고 지내던 꿩은 봄이 되면 먹이를 찾거나 새끼를 낳아 기르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인다. 자연히 긴장하게 돼 제풀에 놀라거나 스스로 울다가 사냥꾼에 잡혀 죽는다. 그게 춘치자명(春雉自鳴)이다. 누가 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뭘 한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매사냥꾼은 꿩이 날아가는 방향에 맞춰 매를 날린다고 한다. 바람을 거스르면 안 된다. 그러려면 꿩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하는데, 조바심 많은 까투리가 항상 먼저 푸득거리며 울다가 발각된다. 꿩은 머리가 나쁜 새인가. 장두노미(藏頭露尾)라는 말도 꿩과 관련 있다. 머리는 감췄지만 꼬리가 드러났다는 뜻이니 급할 때 엉성하게 숨어 결국 들킨다는 말이다.

인간사에도 춘치자명이 많다. 조선 22대 왕 정조는 매력적이지만 문체반정(文體反正)이라는 고루한 조치도 취했던 보수적 군왕이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이후 요즘 말로 가벼운 에세이류나 소설문체가 유행하자 정조는 괴이한 글을 쓰지 못하게 하고 순정고문(醇正古文)으로 문풍을 되돌리려 했다. 그래서 박지원, 이옥 등 걸출한 문인들이 질책을 받고 반성문을 써내야 했다.

진사 강이천(姜彛天·1768~1801)도 이상한 글을 쓰고 천주교 교리를 배워 민심을 혼란시킨다고 배척된 끝에 1797년 제주도로 유배됐다. 정조는 당시 “좋은 방향으로 수습해 무사히 끝내려 했더니 강이천이 스스로 벗어나려는 계책에 급한 나머지 도리어 와서 고변(告變)을 했다”며 “참으로 이른바 봄 꿩이 스스로 운다[春雉自鳴]고 한 격”이라고 말했다. 조선왕조실록 정조 21년(1797년) 11월 11일의 기록이다. 정조는 그의 문체를 슬프고 가날프며 들뜨고 경박한 것이 전적으로 소품(小品)이라고 평했다.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백승종 지음)에 그 무렵의 문화쟁투 양상이 잘 설명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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