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의 저력을 한데 모아 세계 속의 에너지밸리(energy valley)로 만들자.”
조환익 한전 사장이 지난 10일 ‘빛가람 나주시대’ 100일을 맞아 직원들에게 전한 일성이다. 조 사장은 “한전이 있는 나주로 오겠다는 기업들이 많이 생기고 이 지역 대학들도 전기공학과 신증설 등 에너지 분야에 핵심적 노력을 쏟기 시작했다”면서 “이것이 바로 한전의 저력이고 파급력이며 혁신도시의 근본적 취지”라고 강조했다. 평소 한전의 나주 이전을 ‘숙명’이라 표현하며 직원들을 독려해 온 그가 다시 한번 ‘일신월이(日新月異)’의 각오를 재확인한 것이다.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전은 작년 12월 1일 28년간 이어온 서울 삼성동 시대를 마감하고 전남 나주 혁신도시 신사옥에 새 둥지를 틀었다. 이후 지난 100일간 나주를 세계적인 에너지밸리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향해 쉼없이 달려왔고 그 구상이 속도를 내며 착착 실현되고 있다.
◇혁신도시 이전 100일 만에 첫 협력기업 탄생 ‘결실’ = 지난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차로 2시간여 달려 도착한 전남 나주 빛가람 혁신도시. 나주 금천면과 산포면 일대 733만㎡ 평지에 조성된 이곳 혁신도시에는 한전을 비롯해 한전KPS, 한전KDN,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한국농어촌공사,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13개 공공기관 청사가 들어서 있다.
그중에서도 혁신적 디자인과 지상 31층, 154m의 높이의 위용을 자랑하는 한전 신사옥은 13개 청사 사옥 중 가장 높이 솟아 단연 눈에 띄는 모습이었다. ‘친환경 그린’이라는 독특한 콘셉트도 자랑한다. 에너지를 소비만 하는 기존 건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에너지 절감은 물론 생산도 하는 신개념 사옥을 지향한다. 한전 관계자는 “신사옥에 6750kW 규모의 신재생 에너지 설비를 갖춰 연간 2300만㎾h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전체 건물 에너지의 40% 이상을 자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전은 혁신도시 이전으로 세계 9위의 ‘글로벌 에너지 공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그 중심에 ‘빛가람 에너지밸리’ 가 있다. 미국의 정보통신(IT)산업 중심지인 실리콘밸리, 영국의 에너지 도시인 캠브리지 사이언스 파크처럼 나주 빛가람 혁신도시에 에너지기업을 집적시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에너지 산업의 허브, 에너지 첨단기술의 메카로 키워나간다는 게 골자다.
한전은 우선 한전KPS(전력설비 정비 공기업), 한전KDN(전력 IT 전문기업) 등 함께 나주로 이전한 전력그룹사와 지역 산학연 연구개발(R&D)에 연간 100억원 이상을 투자해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마이크로그리드(소규모 독립형 전력망), 전기차 등과 관련된 미래 유망 아이디어를 발굴할 계획이다. 광주전남 대학생 연수와 대학원 석·박사 인력 개발 참여를 늘려 지역인재 육성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이날은 마침 나주시청에서 한전과 보성파워텍 간의 투자협약 체결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보성파워텍은 한전이 추진하는 에너지밸리 1호 유치기업이다. 나주 본사 이전 100일 만에 협력기업 유치에 성공한 만큼 더 빛나는 성과였다는 평가다.
나주시 왕곡면에 조성 중인 나주혁신산업단지의 첫 분양기업이 된 보성파워텍은 이곳에 2016년부터 3년간 총 100억원을 투자한다. 부지 8025㎡를 매입해 공장을 지어 80명의 인력을 고용하고 친환경 신소재강을 활용한 전력기자재와 사물인터넷(IoT) 기반 스마트센서 등을 생산할 계획이다.
◇빛가람 에너지밸리 조성에 ‘속도’… 협회·연구소·외국기업까지 유치 = 이번 첫 기업유치 성공에 따라 ‘빛가람 에너지밸리 사업’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전은 나주시 등 지방자치단체와 힘을 합해 에너지밸리에 내년까지 100개, 2020년까지 500개의 전력·에너지 기업을 유치, 빛가람 지역을 ‘대한민국 전력수도’로 건설해나가는 계획이다. 오는 5월에는 ‘빛가람에너지밸리 로드맵’도 내놓는다.
나주시 관계자는 “혁신산업단지는 올해 말 준공될 예정이지만 5월부터 토지 사용이 가능하다”며 “이번 협약을 계기로 한전 연관 기업이 지속적으로 들어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전의 나주 에너지밸리 조성에 속도를 내고자 올해 66억원을 투입해 에너지 강소기업 유치에 전력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전력분야 소프트웨어(SW) 기업 등 ICT(정보통신기술) 기업이나 한전의 협력업체, 전기 관련 협회·연구기관 등 입주 가능성이 큰 곳이 우선 유치 대상이다.
특히 에너지밸리에 입주하려는 중소기업들에게는 보조금 지원, 조세 감면 등의 혜택을 주고 해외수출을 돕는다. 또 10억원을 들여 기업을 이전하거나 창업할 때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에너지밸리 센터’를 세울 계획이다. 중소기업 육성펀드 2000억원을 출연해 이전기업의 비용 부담을 덜어주고 ‘에너지 밸리 박람회’도 열어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 기틀을 마련키로 했다
조환익 사장은 이날 행사에서 “빛가람 지역이 세계적인 에너지 밸리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업 유치와 인재 양성 등에 더욱 매진할 계획”이라며 “투자설명회 등을 통해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물론, 외국기업 투자 유치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