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통계청에 따르면 60세 이상 가구주 가구의 평균소비성향이 처음으로 70% 아래로 떨어지는 등 최근 11년간 모든 연령층 가운데 가장 큰 하락폭을 보였다. 특히 50대 가구주 가구는 지난해 소득과 처분가능소득이 8년 만에 모든 연령층에서 가장 높았지만 평균소비성향은 최저수준을 기록하는 등 50대 이상 가구의 소비 둔화가 심각한 실정이다.
고령층의 소비 둔화는 자녀 교육비 부담으로 노후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국민연금 같은 공적 연금의 보장규모는 갈수록 줄고 있어서다.
또 초저금리 기조는 노년층에 직격탄이 됐다. 초저금리가 예금과 연금 등 가계의 이자수지를 악화시켜 소비 위축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기대수명이 늘어나 은퇴 이후 소비에 필요한 자산은 더 늘어났지만 1%대로 낮아진 은행 이자를 받아 생활을 유지하기 벅찬 상황이다. 저금리 기조는 노후대비를 위한 연금이나 보험금 수령액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는 일본에서 나타났던 현상과 닮은꼴이라는 분석이다. 과거 일본에서도 버블붕괴 이후 고령층 소비성향 저하 현상이 10년 이상 지속됐다.
전문가들은 일본과 같은 급격한 소비 위축을 피하기 위해서는 연금제도를 강화하고 정년연장을 통해 노후 준비 기간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령층이 노동시장에서 머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노인빈곤율을 낮출 수 있고 사회보장 관련 재정 부담을 낮춰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 근시안적인 소비부양 대책보다는 근본적인 구조적 해법 마련이 더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일본과 미국, 독일 등 선진국은 정년연장 등 고령층이 적극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소득수준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미 2010년대로 진입하면서 고령화율(65세 이상 노인인구의 비율)이 25%를 넘은 일본의 경우 경기불황에 대한 우려로 노년층은 사실상 지갑을 닫았다. 이에 일본 정부는 고령층의 소득을 높이기 위해 1998년 정년을 60세로 의무화한 데 이어 2013년에는 정년을 65세까지 연장했다.
또 임금피크제 활성화를 위해 고령자를 고용하는 기업에 근로자 1인당 월 5만~7만엔(46만~65만원)의 지원금과 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 이와 함께 연령에 관계없이 일할 수 있도록 모집 및 채용 시 연령불문구인 비율을 30%까지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에 이어 고령화율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독일도 65세 이상 정년 의무화 정책을 시행 중인 가운데, 2029년까지 정년을 67세로 또다시 상향 조정할 계획이다.
특히 독일은 2004년부터 정당한 이유 없이는 고령자를 우선적으로 해고할 수 없도록 법적 제재를 하며 고령근로자를 해고하는 기업에 세금이나 사회보험료 분담률을 높이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독일은 고령자 취업에 대한 인센티브도 제공하는데 가령, 50세 이상 최소 6개월 실업자를 고용하는 기업에 통합 보조금을 지급하고 3년 간 임금의 최대 50%를 지원해 기업에 고령자채용 유인을 제공한다.
미국과 영국은 조기 퇴직을 방지하는 정책과 오래 일할수록 연금을 증액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은 조기 퇴직을 방지하기 위해 67세 전에 퇴직하면 연금을 5∼6.7% 감액하고, 67세 이후에 퇴직하면 연금을 8% 증액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며 영국도 퇴직연금 조기 수령 금지와 퇴직 연장 시 연금을 10.5% 증액하고 있다.
김주영 산업연구원 박사는 “고령근로자의 생산성이 높게 유지됐을 때 기업의 노동 수요와 임금의 급감을 막을 수 있다”며 “정부는 고령 근로자에 대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재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높은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퇴 이전보다 수준은 낮더라도 안정적 소득을 유지할 수 있는 일자리를 확대하고, 정년퇴직 이후에도 계약직 형태로 재고용하는 방식으로 소득 공백 기간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엘리 ellee@, 박상영 기자 sy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