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친박(친박근혜), 박 대통령을 사랑합니다."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은 공공연히 이 같은 대통령 예찬론을 펼친다. 지난해 3월 취임한 이 행장은 당시 보은인사 논란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대통령님을 사랑합니다”라는 말로 대신 입장을 표명했다. 이 행장과 함께 박근혜 정부 들어서면서 금융권에서는 기획재정부 관료를 지낸 모피아와 MB의 고려대 인맥들이 자취를 감추고 대신 서강대 출신들이 연이어 요직에 올라선다. 이른바 ‘서강금융인회’(서금회) 멤버이다.
이들은 박근혜 정부 초기에는 대통령 동문이란 이유로 도리어 차별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중반기 접어 들면서 금융권의 요직을 속속 차지하면서 파워를 과시하기 시작했다.
◇금융권, 요직을 향한 막차가 들어온다 =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은 서금회 논란에 대해 실체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는 “같은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끼리 모여 식사하는 모임”이라고 해명한다. 그러나 서금회 최연장자(수학과 67학번)로 대선캠프에도 몸 담았던 이 행장의 주장은 설득력에 한계가 있어 보인다. 이 행장은 금융권 요직에 서금회 출신 인사들이 대거 몰리는 이유에 대해 “서강대 출신 금융인이 소양을 갖추고 성실하게 노력한 결과”라고 말한다. 서금회 인사가 잇따라 금융권 고위직에 오른 것이 우연이 아닌 실력이라는 얘기다.
최근 박근혜 캠프에서 일했던 신성환 홍익대 교수가 금융연구원장에 내정됐다. 당초 금융연구원장 직은 남주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가 유력했다. 그러나 서금회 논란이 재연되면서 신 교수에게 넘어갔다는 후문이다.
금융권은 서금회의 활동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분석한다. 현 정부의 임기가 3년가량 남은 점을 감안하면 주요 금융사 CEO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이 시작됐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지난 10일 우리은행 사외이사, KB금융 계열사 사장에 서금회 인사들이 낙점됐다. 우리은행의 사외이사 후보에 오른 정한기 호서대 교수도 서금회 맴버다. 지난 5일 박지우 전 국민은행 수석부행장이 KB금융지주 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KB캐피탈 사장으로 내정됐다.
그는 KB금융 내분 사태의 핵심 관련자 중 한 명으로 금융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고 지난해 말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초 중징계에서 경징계인 주의 처분으로 수위가 감경되긴 했지만 KB금융 내분사태 핵심 당사자가 불과 두 달 만에 현직에 복귀한 것은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이다. 박 내정자는 서금회 창립 멤버다. 지난 2007년 창립 때부터 6년간 회장직을 맡았다.
서금회는 지난 2007년 박 대통령이 이명박 후보에 밀려 대선에 나서지 못한 것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처음엔 75학번 중심으로 10여명 정도였다가 18대 대선 직전 송년모임에 300여명이 몰렸다. 주로 은행을 비롯해 증권, 보험, 카드사 등 금융권 전반에 포진하고 있다.
금융권에서 서금회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이덕훈 행장이 수출입은행장에 임명되면서부터다. 서금회 출신은 아니지만 서강대 출신인 홍기택 산업은행 회장도 당시 중앙대 교수로 대선 캠프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활동한 이력 덕분에 서금회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후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당초 유임이 유력했던 이순우 전 행장을 제치고 은행장 자리에 앉았다. 몇 달간의 논란 끝에 선임된 홍성국 KDB대우증권 사장 역시 대표적인 멤버다.
서금회는 그들의 말과 달리 금융권에서 CEO나 임원 등 만만치 않은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 서금회 회장은 이경로 한화생명 부사장(경영·76학번)이 맡고 있다. 정연대 코스콤 사장(수학·71), 김병헌 LIG손해보험 사장(경영·76), 황영섭 신한캐피탈 사장(경영·77) 등도 서금회 멤버다.
여기에 정치권 인사도 단골손님이다. 서병수(경제·71) 부산시장은 서금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 시장은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 새누리당 사무총장까지 지낸 친박계 핵심 인물이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도 서금회 모임에 자주 참석했다. 현재 금융가엔 금융회사 CEO 인선 과정에서 서금회 멤버들이 친박 핵심 인사인 서 시장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현 정권의 핵심에 ‘줄’을 대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다.
금융권 한 인사는 “서금회에는 정치권 인사도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서병수(경제·71) 부산시장은 서금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서금회 출석률도 높다. 서 시장은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 새누리당 사무총장까지 지낸 친박계 핵심 인물이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도 서금회 모임에 자주 참석했다. 서금회 멤버들이 정치권인 서 시장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금융권 요직에 줄을 대고 있다는 얘기는 공공연한 비밀로 통했다. 정치권 인사가 핵심 멤버로 자리 잡으면서 서금회가 금융권 인사에 충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의 인적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밀어주고, 끌어주고… 상부상조 서금회 = “서, 서, 서”, “하늘에는 태양, 땅에는 서강, 서강에는 서금회.” 서금회의 건배사다. 이른바 대통령의 동창인 서강대 출신 금융권 인사들의 모임인 서금회는 논란의 핵심인 만큼 구호 또한 ‘금융권에서 우뚝 서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앞서 이덕훈 행장은 박근혜 캠프에서 일했던 동문 공명재씨를 감사에 앉혔다. 홍기택 회장은 서강대 후배인 홍성국 부사장을 KDB대우증권 사장에 앉혔다. 이처럼 금융권에서는 서금회 파워가 금융권 인사에 영향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공식적인 인사스시템은 존재하지만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많다. 인사시스템 위에 보이지 않는 손만 작동한다는 얘기다. 향후 서강대 출신인 김병헌 LIG손해보험 사장이 초대 KB손해보험 사장에 오른다면 서금회 논란은 다시 뜨거워질 전망이다.
KB금융 안팎에서는 내달경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로부터 미국 내 영업을 위한 지주사 승인을 받는 대로 LIG손보 최종 인수 계약을 마무리하고 초대 KB손보 대표로 김 사장을 선임할 것으로 알려졌다.
서금회의 움직임이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형국’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최근 내정설이 제기된 인사가 여러 비판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원안대로 확정되는 일이 이어지면서 이 같은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서금회 내부에서는 박 대통령 지지율이 올해 초 연말정산 파동 이후 20%대까지 떨어지면서 역풍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서강대 동문 모임인 ‘서강바른포럼’의 일부 간부가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당시 후보를 지지하는 불법선거 운동을 벌인 혐의로 지난 2013년 집행유예를 받은 것도 서강대 출신들을 움츠리게 했다.
금융권 한 인사는 “청와대 ‘문고리 권력’과 정부 내 실세 당국자 몇 명이 유령처럼 금융권 인사를 좌지우지하고, 금융당국 수장들은 정치권 의중을 전하는 전달자 역할을 할 뿐”이라며 “실력보다 정치권에 줄 잘 서는 금융인만 출세하는 ‘코드 인사’는 가뜩이나 취약한 금융산업 경쟁력을 추락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인사는 “외환위기 때보다 시장 상황이 더 안 좋은데 특정 대학 인사가 득세하는 현실이 참담하다”며 “정치권 줄대기, 낙하산 폐해 탓에 금융산업의 경쟁력은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