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진의 루머속살] 전족(纏足)을 벗겨야 산다.

입력 2015-03-25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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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진 자본시장부 차장

최근 우리나라 경제 상황을 보면 중국의 전족(纏足)이 떠오른다. 송나라 때 시작돼 명나라와 청나라에 이어 1900년대 초까지 이어져온 전족은 여성의 발을 천으로 꽁꽁 동여매어 성장을 멈추게 하는 풍습이다.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한 발은 뼈가 부러지거나 근육이 오그라들어 매우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등뼈가 기형적으로 튀어나와 서 있는 자세도 이상해진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당시에는 인기 있는 여성상이었다고 해서 중국의 여성들은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았다.

최근 우리나라 경제가 디플레이션 우려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5%에 그쳐 3개월째 0%대로 담뱃값 인상분을 빼면 사상 첫 마이너스(-0.06%)라고 한다. 최근 경제 상황의 원인을 투자와 소비부진에 따른 것으로 보는 데는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하지만 해법에서는 아직도 우왕좌왕이다. 원인과 결과를 경제적인 시각에서 접근하지 않고 여전히 정치적인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투자와 소비부진은 당연한 결과다. 기업의 CEO 입장에서 역지사지로 따져보면 우리 경제에 투자를 가로막는 요소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기업이 투자하려고 하면 공정거래법의 순환출자를 따져 봐야하고 골목상권 보호라는 명목으로 유통 관련 투자도 막혀 있다.

어떤 효과가 있고 어느 주체가 수혜를 보는지 구체적인 결론도 없는 단통법은 여전히 소비자는 물론 통신사와 제조사까지 옥죄고 있다.

투자에 나서기 전에 자칫 손해라도 보면 배임죄로 조사받지는 않을지 걱정부터 해야 한다. 경직된 노동시장으로 인해 섣불리 채용에 나섰다가 구조조정이라도 하려고 하면 몇 년치 임금을 주고 명예퇴직을 시켜야 한다.

신용평가기관을 통해 등급을 산정해 회사채를 발행했다가 망하기라도 하면 사기꾼으로 인생의 마지막을 잉여의 몸으로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 과연 어느 대기업 경영자가 이런 상황에서 투자에 나서겠는가.

결국 우리 경제를 옥죄고 있는 정책과 규제에 대한 논의가 다시 필요한 시점이다. 정치권은 몇 년간 시행하고도 효과가 없는데다가 부작용까지 나타나고 있는 정책과 규제에 대해 인정하고 수정해야 한다. 하지만 인정은커녕 오히려 또 다른 규제를 쏟아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왜 투자에 나서지 않느냐고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전족을 씌워놓고 발이 왜 안 크고 있냐고 오히려 화를 내고 있는 꼴이다.

소비도 마찬가지다. 일부에서는 가계부채가 이런 상황에서 누가 소비를 하겠냐고 한다. 그런데 과거 또는 해외 사례에서 서민층이 소비를 주도해 소비가 늘고 경제가 살아난 경우가 어디에 있었나 묻고 싶다. 소비는 ‘파레토의 법칙’이 철저하게 지켜지는 곳이다. 아니라면 그 근거를 제시해주기를 바란다.

자신은 부를 좇으면서 타인의 부는 경멸하는 주자학적 가치관이 사회에 팽배해 있다. 세금을 내는 납세자는 인정받기보다는 오히려 탈세는 하지 않는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선이 가득하다. 당신이라면 소비하겠는가.

성적인 콤플렉스에 빠진 당시의 중국 남자들이 여성의 발을 기형적으로 만들고 또 그 모습이 인기가 있자 어느 황제나 관료들도 이를 막지 않았다. 그렇게 중국 여성들은 고통에 빠졌다.

우리 경제도 정부와 정치권의 인기 영합주의로 얼룩진 정책들로 전족을 씌워 고통받고 있다. 기업도 고소득층도 국민이다. 공정한 경쟁과 공정한 법 집행은 당연하다. 하지만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해 대기업을 옥죈다고 중소기업이 산다는 식의 단순한 생각은 버려야 할 때다.

국민은 정치권이 대중 여론에 따라 춤추는 것에 박수 칠 때가 아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동안 가장 고통받은 사람은 중산 서민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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