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북송(北宋) 때의 명재상 범중엄(范仲淹·989~1052)의 ‘악양루기’(岳陽樓記)에 이런 말이 나온다. “옛날 어진 사람들은 지위나 물질적인 것에 기뻐하거나 자기 신세를 슬퍼하지 않았다. 조정의 높은 지위에 있을 때는 오로지 백성들의 노고를 우려하고, 벼슬에서 물러나 있을 때는 오로지 임금의 과실을 걱정한다. 나아가도 근심이요 물러나도 걱정이다. ‘그렇다면 그들(어진 사람들)은 언제 즐거워하는가’ 하고 묻는다면 ‘천하의 근심을 먼저 근심하고[先天下之憂而憂] 천하의 즐거움을 나중에 즐긴다[後天下之樂而樂]’고 답할 것이다.”
두보(杜甫)의 시로 잘 알려진 악양루는 뚱띵호[洞庭湖]와 양쯔강을 전망할 수 있는 웅대한 경관으로 유명하다. 범중엄은 1045년 악양루를 개수할 때 파릉군 태수인 친구 등자경의 부탁을 받고 이 글을 썼다. 우국충정을 담은 천고의 명문이다. 그는 1041~1048년에 ‘경력신정’(慶曆新政)이라는 개혁정치를 추진하기도 했지만, 아부할 줄 모르고 바른 말을 잘 해 세 차례나 귀양 가는 수난을 당했다. 경력은 인종(仁宗)의 연호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李德懋·1741~1793)는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서 돈 10만 관이 생기면 뭘 하겠느냐는 벗들의 질문에 “절반은 비옥한 밭을 사고, 그 나머지는 범중엄이 의전(義田)을 만들어 가난한 친척을 돌봐주었듯 친척 중 굶는 자에게 주겠다”는 등 몇 가지 남을 돕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범중엄은 이렇게 선비들의 사표였다.
그의 인품은 ‘강상어자’(江上漁者)라는 시에서도 엿볼 수 있다. “江上往來人 但愛鱸魚美 君看一葉舟 出沒風波裏(강 위를 오가는 사람들/농어 맛을 즐길 줄만 아는데/그대들 보게나 작은 배 하나/풍파 속에 출렁대는 것을)” 농어만 즐기지 말고 농어를 잡는 이들의 고생도 알라는 뜻이다. fused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