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경의 스크램블 톡]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리더의 기부 스타일

입력 2015-03-2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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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2006년에 우리나라 최고 기업의 회장님이 8000억 원이라는 어머어마한 재산을 사회에 내놓기로 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이’ 분은 이 돈이 어떻게 쓰이든 관여하지 않겠다며 정부와 시민단체가 알아서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8000억 원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했는데도 누구 하나 반기는 이가 없었습니다. 당시 이 회사는 회사와 그룹 오너 일가가 불법대선자금 제공, 편법 상속, 안기부 X파일 파문에 휩싸여있던 시기. 일종의 자구책으로 내놓은 기부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이면 “돈이 얼마나 많으면 이렇게 많은 돈을 아무 조건 없이 내놓느냐” “이거 눈 먼 돈 되는 거 아니냐, 정부가 어떻게 처리할까” “8000억이 옆집 개 이름이냐. 개처럼 벌어 정승같이 쓰는 게 이런 거구나” 등 말이 많았습니다. 당시 본인도 ‘800,000,000,000’이라는 숫자에 대해, 자릿수를 일일이 세어가며 노트에 적고 이걸로 할 수 있는 일들의 목록을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로부터 8년 후인 작년. ‘이’ 분의 일가가 보유한 상장사 지분 가치가 3일 만에 8000억 원 가량 늘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3일간 주가가 6% 올랐을 뿐인데 늘어난 재산이 이 정도라니, 예전에 8000억 원 기부는 이들에겐 그다지 의미있는 액수가 아니었겠구나’ 싶은 생각이, 단순하지만 들었습니다.

갑자기 이 얘기를 꺼내는 건 26일에 팀 쿡 애플 CEO가 자신이 죽으면 전재산을 사회에 기부한다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쿡 CEO는 지금 10살인 조카가 대학에 입학금을 내고 남은 돈을 자선 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가 갖고 있는 재산은 7억8500만 달러(약 8659억 원)에 이릅니다. 여기에는 그가 보유한 애플 주식 1억2000만 달러, 제한부 주식(restricted share) 6억6500만 달러가 포함됐답니다.

제아무리 갑부라해도 남에게 거저 주기에 아까운 것이 돈일 겁니다.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는 세계 1, 2위를 다투는 부자이지만 아직도 연회비가 없는 신용카드를 쓸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멕스 카드를 쓰는 버핏은 처음에는 연회비가 있는 블랙카드를 발급받았는데, 발급 첫해엔 무료였던 연회비가 2년째부터 부과되자 그린카드로 교체했다고 합니다.

쿡 CEO 역시 돈 쓸 시간이 없는 것은 물론 낭비하는 사람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자신의 기부금이 헛되이 쓰이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할 겁니다. 평소 에이즈 예방, 기후변화, 인권 등에 관심을 보여왔지만 쿡 CEO는 어떤 목적으로 기부할지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기부랍시고 그저 수표나 끊어주는데 그치지 않고 자선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방식을 개발할 것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IT업계 거물들이 대학을 중퇴하고 사업에 뛰어든 반면 쿡 CEO는 듀크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친 만큼 기부도 자기만의 방식을 보여줄 걸로 기대됩니다.

이같은 해외의 선진적인 기부문화가 국내에도 정착되기를 바랍니다. 거액을 사회에 헌납하는 것까진 좋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나라도 기부를 하는 이나 받는 이나 투명하고 당당해져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워런 버핏이 주도하는 기부서약운동(giving pledge)에 참여한 슈퍼리치들은 기부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편지 형식의 서약서에 적는다고 합니다. 또한 이들은 자신의 특권과 책임을 강조하고, 그 돈의 사용처에 대해 본인이 제안을 하기도 합니다.

기업이건 기업주이건 종사자가 번 돈을 정부와 시민단체에 무조건 맡기는 건 건전한 기부의 형태와는 거리가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국내 재벌 중에도 해외 슈퍼리치들의 기부서약운동처럼 좋은 선례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참. 쿡 CEO는 포춘이 선정한 ‘올해 가장 위대한 리더’ 50인 중 맨 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명단에 한국인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나저나 ‘이’ 분 일가가 기부한 8000억 원의 행방은 어떻게 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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