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악의 골프장은 어디일까. 평소 골프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 물음에 귀가 솔깃해질 일이다. 몇몇 골프장은 “설마 우린 아니겠지”라면서도 불안해 할 것이고, 또 다른 골프장은 “딴 나라 이야기”라며 무관심한 척 외면하지 않을까. 하지만 골프장 이미지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만큼 밀려드는 불안감은 감추지 못할 듯하다.
소비자 입장에선 환영할 일이다. 그린피, 시설, 서비스 등 소비자 의견이 적극 반영된 평점으로 워스트 골프장 순위가 결정된다면 그간 소홀했던 서비스 개선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에서 워스트 골프장 순위를 발표하는 기관(단체)은 단 한곳도 없다. 골프장 500개 속에서 무한경쟁시대에 돌입한지 오래지만 그린피와 가격 투명도, 서비스 등에서 제자리걸음이라는 소비자 불만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그린피, 캐디ㆍ카트 선택제와 같은 실질적 서비스 개선엔 뒷짐을 쥔 골프장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몇몇 미디어와 관련 업체에서는 경쟁적으로 베스트 골프장 발표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골프전문지 골프매거진과 골프다이제스트, 뉴스전문채널 YTN은 국내 10대 코스(골프장)를 선정하고 있고, 부킹전문 사이트 엑스골프는 올해 초 소비자만족 10대 골프장을 발표했다. 주간 레저신문도 2년마다 ‘친환경 골프장 베스트15’를 뽑는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그 많던 소비자 불만은 어디로 사라지고 베스트 골프장만 남은 걸까.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 골프장에 대한 소비자 불만은 칭찬 일색의 베스트 골프장이 되어 메아리처럼 되돌아왔다. 골프장과의 불편한 관계와 법적 대응이라는 위험 요소가 소비자 불만을 외면하게 만든 이유일 거다.
결국 베스트 골프장 선정 열풍 속에서 일부 부당한 골프장에 대한 소비자의 쓴 소리는 묵살됐다. 경남 남해의 한 골프장은 대중제지만 그린피가 40만원에 육박한다. 클럽하우스 식당에서 판매되는 가장 저렴한 식사는 비빔밥과 김치찌개로 각각 2만원이다. 이 골프장은 2013년 11월 개장 전부터 골프 대중화 역행 논란에 휩싸였지만 지난해 골프매거진이 선정한 10대 뉴 코스와 10대 퍼블릭 코스가 됐다.
골프장의 식음료 값은 이 골프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한국골프소비자모임(이사장 서천범)이 발표한 ‘그늘집 식음료 가격 현황’에 따르면 골프장 캔맥주는 시중 마트 판매가보다 최대 9.8배나 비쌌다. 이온음료(8.2배), 삶은 계란(6배), 캔커피(3.6배ㆍ이상 최고가 기준)도 각각 시중 마트보다 비싸게 판매됐다. 대부분 접대 수요가 많은 수도권 골프장으로 식음료 가격에는 골프장의 교묘한 상술이 녹아 있다. 골프장 스스로 대중화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국내 골프산업 규모는 약 20조원으로 세계가 주목하는 거대 시장이다. 골프 실력은 이미 세계 최강에 이견이 없다. 하지만 국내 4500만명에게 골프는 아직도 딴 나라 이야기다. 500개나 되는 골프장엔 골프를 즐기지 않는 4500만명을 위한 진입로가 없다. 골프장과 대중 사이 가로막힌 낡은 장벽엔 골프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수북이 쌓인 채 방치돼 있다.
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대중화와 동떨어진 가격 정책으로 일관하는 골프장과 소비자 불만은 묵살한 채 베스트 골프장 선정에 혈안이 된 미디어 및 관련 업체가 만든 합작품이다.
골프장도 미디어도 골프 대중화를 외면한다면 결국 해결사는 소비자뿐이다. 1만5000개가 넘는 골프장이 공존하는 미국엔 몇몇 용기 있는 컨슈머 단체에 의해 워스트 골프장이 공개되고 있다. 소비에도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불만을 억누르며 불편한 소비를 이어가는 건 또 다른 피해자를 낳는 나쁜 소비라는 거다. 그래서 그들은 칼을 꺼내들었다. “10대 워스트 골프장을 공개합니다.” 미국의 풍족한 골프 환경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