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내달 1일로 취임 1주년을 맞는다. 지난 1년간의 행보를 보면 무엇보다 통화정책과 소통 측면에서 취임 초기의 기대와 상당히 달랐다.
이 총재는 지난해 3월 3일 중앙은행 수장으로 내정된 첫날 통화 확장을 선호하는 ‘비둘기파’인가 아니면 한은의 독립성과 물가안정을 중시하는‘매파’ 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한번 보시죠”라고 말했다. 당시 대부분의 시장 참가자들은 정통 한은맨인 그가 의례적으로 신중한 답변을 했을 뿐 매파적 기조를 유지해 나갈 것으로 점쳤다.
◇ 기준금리 1%대 시대 열어…비둘기 본색 ‘커밍아웃’ = 그러나 그는 매파적 성향을 띤 중앙은행맨들과 달랐다. 작년 8, 10월 기준금리를 두달 간격으로 하향 조정했다.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3%대에 이르고 가계부채 급증 우려가 고조되는 가운데서 내린 결정이다. 또 이달에는 미약한 경기회복세와 저물가 기조를 이유로 취임 후 세 번째 금리인하를 단행, 기준금리 1% 시대를 열었다.
이 총재는 금리정책 외에도 유동성이 필요한 곳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비전통적 통화정책 수단도 적극적으로 활용해 경기회복세를 뒷받침 했다. 중소기업 지원 대출인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를 지난 9월 3조원 증액한 데 이어 이달에도 5조원을 추가해 최종 20조원으로 확대했다.
통화정책의 효과는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만큼 벌써부터 섣불리 통화정책의 적절성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또한 주요국들이 저물가 저성장 기조 속에서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하는 등 과거에 없었던 경제·금융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총재가 약속한 통화정책 소통 강화가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됐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국민과 시장과의 원활한 소통을 통해 중앙은행의 신뢰를 높이겠다던 그의 취임 초 발언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총 3번의 금리인하 모두 소통 부족 목소리 높아 = 그는 4월 1일 취임식에서 “통화정책의 핵심은 경제주체의 기대를 관리하는 데 있다.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한 정책 운용을 통해 정책 효과를 높여 나가겠다”면서 신뢰 구축을 거듭 강조했다.
이 총재는 작년 7월 한 포럼에서는 “우리가 총재의 통화정책 시그널을 놓쳐 읽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다면 내가 시그널을 잘못 보낸 것이다”라고 단호히 답하기도 했다.
특히 이 총재는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했다’고 비판받은 김중수 전임 총재의 ‘불통’을 정면으로 꼬집기도 했다. 이 총재는 지난해 3월 19일 사상 처음으로 열린 한은 총재의 인사천문회에서 “2013년 5월 기준금리 인하 전 한은의 시장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 총재도 불통 비판에서 예외가 아니게 됐다. 지난해 5월까지도 “금리를 조정할 필요성이 있다면 2∼3개월 전에 시그널(신호)을 줘야한다”던 이 총재가 ‘금리 동결’ 차선에서 갑자기 ‘금리 인하’ 차선으로 바꿨다.
이 총재는 7월에 그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4.0%에서 3.8%로 내리면서 “향후 성장경로에 하방리스크가 다소 큰 것으로 보고 있다”고 언급하고서 8월에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2.25%로 내렸다. 아주 미약한 신호를 잠시 켜고서 차선을 바꾼 셈이었다. 경제 정책의 사령탑이 현오석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서 정권 실세 중 한 명으로 통하는 최경환 현 부총리로 넘어가던 시기여서 시장의 의혹은 더 컸다.
이 총재는 올 3월 인하 때에도 ‘깜짝’ 인하 결정 때문에 소통 부족이 도마에 올랐다.
이 총재도 소통 논란에 대해 잘 인식하고 있다. 그는 30일 기자들과 총재 취임 1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지난 1년간 가장 아픈 점은 소통에 대한 부분이다”며 “소통을 잘 하겠다고 자신감을 가졌는데 저희들이 앞을 보는게 부족했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그는 시그널은 늦었을 수 있지만 통화정책에 대한 판단은 확고했다. 이 총재는 이날 “깜빡이를 늦게 켰거나, 표지판을 조금 늦게 봤을 수 있지만 왼쪽으로 가야하는 것을 오른쪽으로 간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총재의 진짜 소통 능력, 금리 정상화 시기 때 검증될 것 =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는 인하할 때보다 인상할 때 더 강력한 각계각층의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대출이자가 늘고 시중에 돈이 줄어드는 상황을 즐기는 경제주체는 없기에 한은은 사실상 홀로 싸우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총재는 1%대까지 끌어내린 금리를 앞으로 정상화할 때 소통 능력이 더욱 필요해 질 것으로 보인다. 한 한은 관계자는 “내년 4월 금통위원 4명이 한꺼번에 임기가 만료된다”며 “내년 ‘신참’ 금통위원들과 함께 기준금리를 올리려고 할 때 이 총재의 진짜 소통 능력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총재는 소통을 잘 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경제전망치의 정확도를 높이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이 총재는 이날 행사에서 “소통이 안된 가장 큰 이유는 자꾸 경제전망이 어긋나면서 소통도 어긋나는데 영향을 미쳤다”며 “경제전망의 정확도를 높여 신뢰를 높일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