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3월 27일 기준) 전자투표 계약을 마친 유가증권(162개사)과 코스닥(255사), 그리고 비상장사(8개사)는 총 425개사다. 올 들어 전자투표 및 전자위임장 이용 계약을 새로 맺은 곳은 총 346개사로 지난 5년간(2010~2014년) 계약한 기업(79개사)보다 4배 이상 증가했다.
전자투표는 주주들이 주총에 참석하지 않아도 인터넷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로,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다. 올해 전자투표를 실시하는 기업이 급증한 데는 ‘쉐도보팅(shadow voting)’ 폐지가 큰 영향을 미쳤다.
쉐도보팅 제도란 주주가 주총에 참여하지 않아도 투표한 것으로 간주해 정족수를 채우고 다른 주주들의 투표 비율을 의안 결의에 그대로 적용하는 제도다. 본래 주총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시행된 제도였으나, 대주주들이 경영권 강화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올해 폐지됐다. 다만 상장법인이 전자투표 및 모든 주주를 대상으로 의결권 행사를 권유하면 한시적으로(3년) 쉐도보팅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전자투표 계약을 맺은 기업 수가 늘어난 것이다.
한국예탁결제원 관계자는 “지금까지 발행회사들은 쉐도보팅 제도로 주총 안건을 쉽게 통과시켰지만 소액주주들은 주총이 겹치거나 거리상의 문제로 적극적으로 참석하기 어려웠다”며 “이번에 쉐도보팅 제도 폐지와 함께 전자투표가 실시되면서 소액주주들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자투표 행사는 주총 10일 전부터 주총 전일(공휴일에도 전자투표가 가능함)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전자투표 도입으로 주주들의 참여가 늘어날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실제 행사율은 저조했다. 예탁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주주들의 전자투표 행사율은 행사 주식 수 기준 평균 1.93%에 불과하다.
전자투표 행사율이 저조한 이유로 전자투표 홍보 부족과 비용이 꼽힌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주총을 앞두고 전자투표와 관련된 공지를 따로 하지 않고 있다. 전자투표는 기업들이 실시하지만 홍보는 예탁원이 전담하고 있는 상황. 기업도 전자투표 도입 취지를 이해하지만 적극 나서는 데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전자투표를 실시할 경우 수수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규모가 작은 상장사에서는 이 비용도 부담스럽다는 것.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자투표 홍보를 위한 비용을 따로 들이고 홈페이지에 공지를 띄우는 것이 쉽지 않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은 “기업이 부담하는 전자투표 비용은 제도 도입과 관련된 인프라 비용으로 볼 수 있다”며 “전자투표 인프라는 예탁원에서 관리하므로 중소ㆍ중견 기업을 위해서는 이 비용을 낮춰 주거나 예탁원에서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자투표를 실시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크지는 않지만 작은 상장사에는 부담이 될 수 있고, 적어도 제도를 담당하는 기관이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 옳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전자투표 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보안문제와 제도 도입 취지를 더욱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 연구원은 “전자투표 도입으로 투표 편의성이 높아졌지만 투표권 조작, 남용 등의 보안 우려도 있다”며 “비대면 투표이므로 동일인 확인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주주 본인만이 전자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보안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자투표 도입으로 주총 접근성이 높아졌지만 주주들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현장에서 충분히 논의하고 토론을 거쳐 의견을 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은 “전통적 주주 민주주의 측면에서 전자투표 제도가 이를 보완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오히려 전자투표 도입으로 편의성이 높아지면 의사결정의 진중성은 낮아지고 의견 쏠림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