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이걸 어째, 초딩 연애<상>

입력 2015-04-03 10:55 수정 2015-04-04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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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성윤이 할머니는 며느리와 사이가 좋았다. 그러나 어쩌다 수틀리면 “연애 걸어서 시집온 년”이라고 소리 질렀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아들과 연애한 건데도 남들에게 흉을 보고, 며느리에게 대놓고 흠을 잡곤 했다. 1960년대 충청도 어느 산골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시절에 연애는 바람기 많은 여자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말을 할 때도 ‘연애를 한다’가 아니라 꼭 ‘연애를 건다’고 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요즘 초등학생 연애 이야기는 놀랍고 기가 막히고 무섭다. 최근 읽은 글 몇 가지를 보자.

장면 1: 여자애가 “내가 니 깔이야?”라며 헤어지자고 하고 가자 남자애가 주먹으로 벽을 치면서 “하 X발, 존나 사랑했는데…”

장면 2: 새우버거 사러 갔더니 초딩 5~6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있었다. 표정이 진지했다. 여자애가 “이런다고 달라지는 게 뭐가 있어? 집에 갈래, 미안” 그러는 거야. 그러자 남자애가 슬픈 목소리로 “하 X발,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병신아!!!” 그 말에 웃다가 새우버거를 떨어뜨릴 뻔했다.

장면 3: 점심 때 ㅈ초등학교 앞 편의점에 햇반 사러 갔는데 초딩 커플(4학년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있었다. 남자애가 묻기를 “X발, 그 새끼가 어디가 좋은데?” 여자애 “너보다 형이야. 새끼가 뭐냐?” 그러자 남자애가 “그래 그 형(난 여기서 빵 터짐)이 먹을 거 사주고 선물 사주고 자꾸 이쁘다고 그러니까 좋냐?” “어” 남자애는 진지하다 못해 마음 아픈 목소리로 “하, 너 이런 여자였냐?” 그랬다. 난 그 다음이 궁금해 과자를 고르는 척했다. 여자애가 하는 말 “꼬우면 니가 내 세컨드하든가.” 알바생과 나는 웃음을 참느라 진짜 죽는 줄 알았다.

한 여고생은 초등 3학년인 여동생이 태권도학원에서 만난 한 학년 아래 남학생과 매일 톡과 전화를 주고받느라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블로그에 썼다. 그 아이는 동생이 목욕탕에 간 2시간 사이에 전화 3통, 카톡, 동영상을 보냈다. “누나 나 진짜 좋아하지?” “나 어디가 좋아?” 이런 걸 수시로 묻고, 아침에 전화 걸어 “보고 싶어 잠도 못 잤어”라고 해 결국 휴대폰을 빼앗았다. 하지만 앞으로 이 아이들을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한다.

인터넷에는 초등학생 연애에 관한 글이 많다. 초등 5학년에 벌써 자기가 모쏠(모태솔로)이라는 아이가 남친도 없고 옆구리가 시려워서(!) 크리스마스 때 곰인형을 사려 한다는 글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초등 3학년이 문방구에서 커플링을 사거나 공원에서 사랑한다며 딥 키스를 하는 걸 보았다는 사람도 있다.

애정 표현이 하도 대담해 선생님들도 당황할 정도다. 1학년 아이들에게 찰흙으로 뭘 만들라고 했더니 반장이라는 녀석이 “○○아 사랑해”라고 같은 반 여친의 이름을 작품에 새긴 경우도 있었다. 어느 유치원의 7세반 교사는 남자애가 꼬깃꼬깃 접은 쪽지를 꼭 쥐고 놀이를 하기에 뭔지 보자고 했다가 깜짝 놀랐다. 거기엔 편지가 씌어 있었다. 한 편의 시였다.

현빈에게

사랑해

너랑 나랑 같이 걸어 다녔을 때

두 눈을 감고 걸어갔어

그동안 꽃이 피어났어

희연이가

이런 정도의 시를 쓸 수 있다면 조기 연애도 괜찮고 바람직한 거 아닐까. 번지는 초딩 연애를 보며 “우리나라 연애계의 전망이 밝다”고 농담하는 사람도 있지만, 초딩 연애는 세심하게 보살피고 다듬어 주어야 할 중요한 사회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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