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 연애는 바람기 많은 여자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말을 할 때도 ‘연애를 한다’가 아니라 꼭 ‘연애를 건다’고 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요즘 초등학생 연애 이야기는 놀랍고 기가 막히고 무섭다. 최근 읽은 글 몇 가지를 보자.
장면 1: 여자애가 “내가 니 깔이야?”라며 헤어지자고 하고 가자 남자애가 주먹으로 벽을 치면서 “하 X발, 존나 사랑했는데…”
장면 2: 새우버거 사러 갔더니 초딩 5~6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있었다. 표정이 진지했다. 여자애가 “이런다고 달라지는 게 뭐가 있어? 집에 갈래, 미안” 그러는 거야. 그러자 남자애가 슬픈 목소리로 “하 X발,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병신아!!!” 그 말에 웃다가 새우버거를 떨어뜨릴 뻔했다.
장면 3: 점심 때 ㅈ초등학교 앞 편의점에 햇반 사러 갔는데 초딩 커플(4학년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있었다. 남자애가 묻기를 “X발, 그 새끼가 어디가 좋은데?” 여자애 “너보다 형이야. 새끼가 뭐냐?” 그러자 남자애가 “그래 그 형(난 여기서 빵 터짐)이 먹을 거 사주고 선물 사주고 자꾸 이쁘다고 그러니까 좋냐?” “어” 남자애는 진지하다 못해 마음 아픈 목소리로 “하, 너 이런 여자였냐?” 그랬다. 난 그 다음이 궁금해 과자를 고르는 척했다. 여자애가 하는 말 “꼬우면 니가 내 세컨드하든가.” 알바생과 나는 웃음을 참느라 진짜 죽는 줄 알았다.
인터넷에는 초등학생 연애에 관한 글이 많다. 초등 5학년에 벌써 자기가 모쏠(모태솔로)이라는 아이가 남친도 없고 옆구리가 시려워서(!) 크리스마스 때 곰인형을 사려 한다는 글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초등 3학년이 문방구에서 커플링을 사거나 공원에서 사랑한다며 딥 키스를 하는 걸 보았다는 사람도 있다.
애정 표현이 하도 대담해 선생님들도 당황할 정도다. 1학년 아이들에게 찰흙으로 뭘 만들라고 했더니 반장이라는 녀석이 “○○아 사랑해”라고 같은 반 여친의 이름을 작품에 새긴 경우도 있었다. 어느 유치원의 7세반 교사는 남자애가 꼬깃꼬깃 접은 쪽지를 꼭 쥐고 놀이를 하기에 뭔지 보자고 했다가 깜짝 놀랐다. 거기엔 편지가 씌어 있었다. 한 편의 시였다.
현빈에게
사랑해
너랑 나랑 같이 걸어 다녔을 때
두 눈을 감고 걸어갔어
그동안 꽃이 피어났어
희연이가
이런 정도의 시를 쓸 수 있다면 조기 연애도 괜찮고 바람직한 거 아닐까. 번지는 초딩 연애를 보며 “우리나라 연애계의 전망이 밝다”고 농담하는 사람도 있지만, 초딩 연애는 세심하게 보살피고 다듬어 주어야 할 중요한 사회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