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슈퍼맨이 돌아와도 슈퍼맘은 힘들다.

입력 2015-04-08 11:10 수정 2015-04-08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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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경 NH투자증권 차장

지난 토요일, 불스레이스(금융투자인마라톤대회) 5km를 아이와 걷다 뛰다 하면서 완주했다. 완주 메달을 손에 넣어야겠다는 녀석의 호기에 덩달아 달렸지만 결과적으로 다음 일주일을 버틸 체력이 바닥이 나버렸다.

홈쇼핑에서 이것만 있으면 힘들게 물걸레질 할 필요 없다는 멘트에 혹해 새로 사들인 자동 물걸레 청소기는 구석방에 내팽겨 둔 채 대충 진공 청소기로 면피만 할 수 있는 청소를 하고, 환경 보호와 내 가족의 건강 증진에 앞장서겠다며 거창한 각오로 준비했던 설거지용 대용량 베이킹 소다는 생각지도 못하고 부랴부랴 늘 쓰던 주방세제로 주말 내내 몇끼 쌓인 그릇들을 한꺼번에 해치웠다.

오늘 월요일, 새벽같이 일어나겠다고 여러개의 알람을 맞춰 놓았으나 성에 차는 시간에는 일어나지 못했고 대충 화장하고 택시 타고 부랴부랴 사무실에 왔지만 빨리 도착하지도 못해 부장님의 웃는 얼굴에도 눈치가 보인다.

아이에게는 학교 잘 다녀오라는 인사도 못했고, 중년까지 본인도 당당한 커리어우먼이셨으나 이제는 자식들 걱정에 집안일에 손주 보살피는 일까지 도맡아 우리의 가정을 든든히 지켜주시는 시어머니가 아이 밥 먹여 학교 보내고 며느리가 잊어버린 영어학원비 결제까지 대신해 분주하실 것을 생각하니 사무실 책상에 앉아 아침이라 먹고 있는 이 김밥이 왠지 목에 짠하게 걸린다.

업계 최대 증권사 16년차 차장, 공채 입사로 한번의 이직 없이 순탄하게 회사생활을 해 왔고 온라인 마케팅 커리어를 잘 쌓아 남들이 보기에 당당한 직장인 여성인 나에게 요즘 최대 이슈는 바로 가정생활과 회사생활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몇 일간 야근해가며 준비한 보고서로 혀에 모터를 단 것처럼 프레젠테이션을 퍼펙트하게 진행 하고 그간 쌓인 피로가 훨훨 날아갈 것 같은 찰나, 학원에서 아들 녀석이 넘어져서 다쳤다거나 몇 일 야근하느라 못 봐준 수학 단원 평가시험을 망쳐온다거나 친정 아버지 생신을 잊고 있다 늦은 퇴근할 때 기억나거나 하는 일들로 깔끔하게 마음 편한 하루를 손에 꼽기가 어렵다.

작년 인기몰이를 했던 “미생”의 “선차장”을 보면서 감정이입하고 때로는 눈물 흘렸던 많은 워킹맘들이 있을 것이다. 직장 안에서 나의 롤 모델인 똑소리 나는 한 여자 팀장님은 많은 직원들을 리드 하며 어려운 프로젝트를 척척 성공시키지만 지금도 아이 방학 때마다 점심밥 먹여줄 학원을 찾아대느라 방학 전부터 바쁘고 어쩌다 학교에서 자율 휴업이라며 평일에 쉬어버리면 돌보미를 구하느라 안절부절이다.

우리 집에도 “사랑이 아빠 추성훈”이나 “삼둥이 아빠 송일국” 같은 멋진 슈퍼맨 아빠는 있다. 하지만 평일에는 회사의 슈퍼맨이 되어야 내년 진급을 노릴 수 있는, 정년까지 근무해도 아이가 취업할 나이가 되지 않는 그도 나와 같이 지금 늘 회사와 가정에 모두 충실하지 못한 것 같은 부족함과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으리라.

10살이 되자 키도 훌쩍 크고 키가 큰 만큼 마음도 커진 것인지 벌써 사춘기라도 된 것인지 내 맘처럼 되지 않는 아이 때문에 뭔가 대답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우리집 슈퍼맨에게 아이를 맡겨놓고 저녁 늦게 서점에 가서 이책 저책 보던 중 소아정신과의사 서천석의 “우리 아이 괜찮아요”라는 책을 집어 들었는데 부제인 “당신도 당신의 아이도 괜찮습니다”라는 한 줄 문장에 울컥하며 한편으로 힐링이 되는 내자신을 보면서 다시 한번 강한 워킹맘이 되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두마리 다 놓친다는 말은 옛날 이야기, 멀티가 대세인 세상이다.

지금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다소 힘들지만 프라이드를 갖고 워킹맘의 자리를 지키다 보면 언젠가 가정과 회사의 균형점을 찾는 진정한 고수가 되는 그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며, 내일은 종일 빡빡하게 신규 프로모션을 기획하고 퇴근 후에 아이가 함께 해달라고 노래를 부르는 밀린 줄넘기 연습을 할 터이다.

세상의 모든 워킹맘 처럼 엄마의 이름으로 파이팅을 짜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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