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성완종, 어머니 향한 특별한 효심 "꼭 진실 밝혀 떳떳한 아들 되겠다"

입력 2015-04-09 16:21 수정 2015-04-09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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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경남기업 전 회장이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숨진 채 발견된 성완종 경남기업 전 회장은 생전에 어머니에 대한 특별한 효심을 갖고 있었다.

9일 숨진 성 전 회장이 혼자 살던 자택에는 "어머니 묘소에 묻어달라"는 내용의 유서가 남겨져 있었다. 성 전 회장은 8일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얼마 전 돌아가신 어머님의 추모식이 고향에서 있었다. 어머님 영전 앞에서 엎드려 굳게 다짐했다"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진실을 꼭 밝혀드려, 떳떳한 아들이 되겠다고 반드시 명예회복을 하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성 전 회장은 지난해 5월에도 한 주간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낸 바 있다. 다음은 주간조선을 통해 발표된 성 전 회장의 '나의 어머니' 글 전문이다.

"인절미만 보면 나는 눈물이 난다. 고소한 콩가루가 묻어 있는 인절미에는 우리 4형제에 대한 어머니의 애틋한 사랑과 안타까움이 버무려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충남 서산에서 창녕 성씨 가문의 종갓집 4형제 중 맏이로 태어났다. 세상의 혹독한 현실을 알게 된 것은 나에게 너무나 이른 초등학교 5학년 때이다.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들이면서 어머니와 우리 4형제는 동지섣달에 엄동설한 칼바람보다 매서운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학대를 피해 집을 떠나야 했다. 살기 위해 지인들로부터 구걸하다시피 했지만 이틀 동안 곡식자루에 담긴 것은 채 두 됫박도 안 되었다. 살기 어려운 시절이란 그런 것인지, 아니면 사람 인심이 원래 그런 것인지 나에게 세상은 야속하기만 했다.

며칠 뒤 어느 늦은 밤 어머니가 우리 형제를 깨웠다. 어머니는 손수 만든 인절미를 먹이셨다. 동생들은 그 늦은 밤에 영문도 모른 채 인절미를 먹고 다시 잠이 들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낮에 이미 어머니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돈을 벌어올 테니 너는 동생들과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남겼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렇게 애틋함만을 남기고 고향의 호랑이고개를 넘으셨다. 늦게 쫓아갔는지, 아니면 어두운 풀숲에 숨으셨는지 어머니는 나의 울부짖는 소리에 답이 없으셨다. 힘에 부쳐 어두운 고갯길에서 기절한 나는 새벽빛에 눈을 뜨고 몸을 추슬러 동생들에게 갈 수 있었다.

우리 형제는 아버지 집으로 돌아갔지만 집은 선술집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동생들을 잘 돌보고 있으라는 어머니의 숙제를 생각하면서 매일 힘든 땔감을 하고 동생들을 돌보며 지냈다. 그러나 갖은 사유를 들어 날아오는 새어머니의 폭행과 폭언은 너무도 힘들었다. 아버지 또한 그럴 때면 늘 새어머니 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동생의 발이 동상에 걸려 벌겋게 달아오른 것을 발견했다. 젖먹이 동생이 배가 고파 울 때마다 내가 업어 달래곤 했는데 포대기 아래로 발이 나와 동상에 걸린 것이다.

나는 막내동생을 업고 60여리(25㎞) 떨어진 외할머니께 달려갔다. 외할머니는 우리를 보자 눈물부터 보이셨다. 할머니는 우리가 올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신 듯했다. 우리가 혹시 올지 모르니 잘 돌봐달라고 어머니가 할머니께 부탁을 하신 듯했다.

할머니께 막내동생을 맡기고 돌아온 나는 갖은 이유로 매를 맞다 쫓겨나는 일을 반복해야만 했다. 머슴보다 못한 생활이 계속된 것이다. 쫓겨나면 헛간이나 마루 밑에 숨어 지냈는데 동생들이 자신들의 밥을 아껴 주먹밥을 만들어 몰래 건네곤 했다. 나는 동생들의 그 마음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생활을 견디다 못한 나는 어머니를 찾기로 마음먹고 다시 외할머니댁을 찾았다. 나는 어머니가 어디에 계시는지 물었지만 힘든 당신의 딸이 더 고생할까봐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나는 할머니가 예배당에 간 틈을 타 할머니가 귀중한 것을 보관하시던 이불단 사이에서 어머니의 편지를 발견했다. 서울에서 이비인후과를 운영하는 병원장 댁에서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는 얘기, 주인 부부가 잘 대해줘서 큰 어려움 없이 지내고 있다는 얘기가 쓰여 있었다. 그리고 말미에 조심스럽게 ‘새끼들이 늘 걱정’이라는 말이 덧붙여 있었다.

나는 편지를 몰래 감추고, 가면서 사탕이라도 사먹으라며 외삼촌이 쥐어준 150원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동생들에게 빵과 과자를 사주고 꼭 어머니와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호랑이고개를 넘은 어머니처럼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는 동생들을 떨치고 봉투 주소에 적혀 있는 서울 영등포로 향했다.

초등학교 졸업도 못하고 떠나온 어린 나에게 영등포는 너무도 무서웠다. 우선 얼어 죽지 않기 위해 하룻밤 묵을 곳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추위를 피해 들어간 삼륜차 화물기사 대기실에서 세상에는 꼭 나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화투를 치거나 난롯불을 쬐며 한담을 나누는 사람, 화투판을 벌이고 있는 사람, 한쪽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 중에서 나에게 말을 걸고 사정을 들은 후 몸을 녹이고 누울 공간을 마련해 준 은인이 나타난 것이다. 박씨라 불리는 곰보아저씨였다. 아침이 되자 아저씨는 식당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나는 해장국을 먹으며 ‘눈 뜨고 코 베어가는 서울’이 달라 보였다.

그 박씨 아저씨는 얼마 후 용달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렇게 서울에서 우리 모자는 눈물의 상봉을 하였다. 따듯한 온정을 베푸신 박씨 아저씨는 우리를 남기고 떠났다. 우리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이튿날 영동포역 인근의 기사 대기소들을 찾아다녔지만 끝내 그분을 찾을 수 없었다. 박씨 아저씨란 사람은 어두운 밤길을 헤매고 있는 나를 나의 목적이자 소망인 어머니에게 인도하고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이후 나는 그런 감사한 분들을 여럿 만났다. 신문을 돌리고, 약국에서 약을 배달하는 나에게 잠잘 곳과 공부할 책을 제공해주신 영등포교회 전도사님, 고향 서산 해미로 내려와 운수업을 하다 교통사고로 크게 낙담하고 불안에 떨 때 도움을 주신 육군 중령 등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들어 주신 분들이다.

나의 젊은 시절의 경험은 나의 생활자세부터 종교적 신념까지 굳건하게 하였는데 그 중심은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고향 서산으로 다시 내려오신 뒤에도 조개를 캐며 우리 형제들을 키우셨다. 내가 사업을 하며 형편이 나아졌을 때에도 어머니는 몸에 밴 근검과 봉사정신으로 당신보다 형편이 어려운 다른 이들을 위해 힘쓰셨다.

어머니는 1996년, 64세로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 새벽마다 시골교회 새벽종을 25년 동안 치시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하신 우리 어머니, 자신의 집에서 고아들을 돌보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밤에도 대문은 물론이고 쌀이 있는 광의 문을 열어놓으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께 도움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빈소를 찾았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대로 평생을 사회를 위해 힘쓰셨던 것이다.

어머니는 원칙에 강한 분이셨는데, 내가 어떠한 일을 계획하고 처리함에 있어 어둠 뒤에 분명히 다가올 희망의 새벽빛과 같은 존재이셨다. 내가 조금이라도 어머니의 뜻과 어긋나는 길을 갔더라면 지금의 내가 과연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면 어떠한 고난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의 지금까지 삶이 이것을 증명한다고 믿는다. 미래에 대한 밝은 신념을 갖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회를 제공하고자 나는 그동안 직원 채용 시 지방대 출신자에 대한 배려를 하고 있다. 서산장학재단을 통한 장학·문화·사회복지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당신의 어려움은 감추시더라도 다른 사람의 어려움은 두고 보지 못하셨던 나의 어머니의 헌신을 지금도 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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