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뮤지컬 앙코르 커리어 발굴 프로젝트-이유리 교수

입력 2015-04-1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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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 뮤지컬시장에서 가장 주목받을 ‘꽃보다 할배’는 뮤지컬 제작자이자 연출가 윤호진이란 이름일 것이다.

연극으로도 부담스러운 희곡 ‘보이체크’로 과감하게 뮤지컬을 만들더니 연초부터 안중근 장군을 그린 뮤지컬 ‘영웅’ 하얼빈 현지 공연으로 화제가 되고 한국 창작뮤지컬로는 유일하게 20년 장수한 뮤지컬 ‘명성황후’의 20주년 기념 공연 준비로 그 특유의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의 나이 67세. 연령차별주의가 심각하고 노년층은 경직된 꼰대에 부담스러운 부양 대상으로 뒷방 신세인 지금 한국 사회에서 윤호진 연출의 행보는 독보적일 수밖에 없다. 그의 가장 큰 에너지는 여전히 열정적이고 도전적으로 예술적인 실험을 즐긴다는 것이고 그 새로운 추진들에 대한 신념과 자기 확신이 투철하다는 것이고 그러면서도 인생의 연륜에서 나온 사회적 책임의식이 작품마다 묻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앙코르 커리어(Encore Career)의 표상적인 인물이다.

앙코르 커리어는 미국의 대표적 은퇴 설계 지원 비영리단체인 시빅 벤처스를 만든 마크 프리드먼 대표가 100세 시대에는 사람들이 50세를 기점으로 인생 2막을 준비해 75세까지 25년은 더 일하게 되고 퇴직자들은 더 이상 ‘일로부터의 해방’(Freedom form work)이 아닌 ‘일할 자유’(Freedom to work)를 갈구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만든 말이다. 앙코르 커리어는 결국 지속적인 수입원에 삶의 가치 추구가 목적이고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갖춘 인생 후반부 반편생의 일자리를 의미한다. 스스로에게 노년에 어떤 사회적 가치로 살지, 다시 배워서라도 이루지 못한 사회적 꿈에 재도전할 각오가 있는지 자문할 수 있는 중장년층이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해 혁신적인 가치 창출을 적극적으로 해서 사회적으로 기여하고 경제적으로 스스로의 노년을 케어하는 실천적인 해답을 찾는 것이다. 시빅 벤처스는 2006년부터 60세 이상의 이런 혁신적 시니어 활동가 중 뛰어난 사회사업가를 선정해 그들의 인생 이모작을 지지하고 알려서 노년층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노년층의 가치 있는 일자리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고 있다. 앙코르 커리어 중 유진 존스의 ‘Opening Minds through the Arts’(예술을 통한 마음 열기) 프로젝트는 84세의 개발자가 전문 경영인으로 평생 산 노하우와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과 인성 계발이 취약한 초등학교 교육에 대한 우려로 시작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 지금 30개가 넘는 미국의 초등학교에서 정규교과 과정에 도입해 교육 효과와 학생들의 변화를 체감한다고 한다. 선진국의 사례이긴 하다.

그런데 지금 한국도 퇴직자의 일에 대한 열망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조사 결과를 보면 중장년층 응답자의 91%가 계속 일하고 싶단다. 앞으로 15년만 지나면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3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로 치닫는데 그 가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평균수명도 100세를 넘어서면서 말이다. 그런데 은퇴 후 인생 재도전에 대한 대책은 국가 정책적으로도 전무하다. 중장년층의 은퇴 후 남은 반평생의 잉여 시간이 사회적 부담과 책임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 공연업계의 자위적 속설 한 가지는 우리 직업은 은퇴가 없어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창작의 본질이 끝없는 실험성과 도전임에도 공연 종사자 스스로도 나이가 들수록 창조적인 노력을 멈추고 업계 풍토도 나이 든 종사자들은 매너리즘에 찌든 권위의식의 상징들로 치부해 공동 작업을 꺼리고 관객들도 젊고 재미난 감각에 열광한다. 은퇴가 없는 공연업에서 조로현상은 더 빠르다.

윤호진 연출가가 한국 뮤지컬의 소중한 자산인 것은 나이 70대에도 도전적 현역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토니상을 휩쓸며 또 한 편의 세계적인 히트 뮤지컬로 찬란하게 탄생한 뮤지컬 ‘킹키부츠’는 1980년대 세계 팝음악의 아이콘 신디 로퍼가 환갑의 나이에 뮤지컬 작곡가로 데뷔한 작품이어서 더 화제였다. 신디 로퍼는 평생을 바친 음악을 식량으로 멋지게 앙코르 커리어를 실현한 것이다. 팝의 황제 ‘스팅’도 지난해 64세의 나이에 브로드웨이 뮤지컬 ‘라스트 십(The Last Ship)’의 음악감독에 배우로 출연까지 했다.

대책 없이 100세 시대를 맞고 있는 한국의 베이비부머 중에서도 제2의 윤호진, 신디 로퍼들이 나타나 한국형 앙코르 커리어의 새 비전을 열어 주었으면 좋겠다. 나부터 그동안 현실을 감당하느라 내면 한쪽에 구겨 두었던 꿈을 꺼내 신나는 인생이모작 설계를 추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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