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투자 세미나] 최준철 VIP투자자문 대표, “가치투자 원칙 ‘저위험·적정수익’… 유행 좇지 말아야”

입력 2015-04-1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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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투자는 ‘가격·장래성’ 우선항목 따라 운용사·상품 선택해야

“요즘 유행하는 방식의 해외투자, 사실상 투기에 가깝죠.”

“모멘텀 투자요?…솔직히 저는 게으른 핑계라고 생각합니다.”

최준철 VIP투자자문 대표의 말은 단단했다. 남들이 다 좇는 유행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경계했다. 이를 방증이라도 하듯 응접실 한편에는 벤저민 그레이엄, 워런 버핏, 피터 린치, 존 템플턴 등 가치투자계 원로들의 초상화가 자리를 떡 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마치 투자 거물들의 ‘명예의 전당’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가치투자의 원칙을 말할 때 그에게서 언뜻 고집 센 선비, 엄격한 거상의 얼굴이 보였다. 그러나 그는 올해 겨우 나이 앞자리를 4로 바꿔 단 젊은 경영자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부터 사모펀드를 운용하고 투자자문사까지 차린 ‘창업의 전설’, 5년 만에 수익률 300%를 달성한 ‘괴물 투자자’, 투자문화 개선에 앞장서는 ‘가치투자 전도사’.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들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청지기’라고 정의했다. 고객이 맡긴 돈을 잘 지키는 데 가장 큰 역점을 두기 때문이란다. 최 대표는 “어떻게 하면 내 고객과 직원들이 조금 더 잘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요즘 최대의 고민”이라며 “올바른 투자문화 확산에 이바지하는 것 역시 장기적 인생 목표”라고 욕심을 밝혔다.

최 대표는 고객과 직원들에겐 운용실적으로, 자본시장 구성원들에게는 각종 강연과 칼럼, SNS활동으로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다.

◇열등감의 ‘긍정적인 예’…가치투자 샛별 키우다=최 대표가 주식에 입문하게 된 사연은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초등학생 시절 느꼈던 일종의 ‘열등감’이 발단이다. 부산 출신인 최 대표는 당시 시내에 딱 두 군데 있던 사립초등학교 중 한 곳에 입학했다. 부산에서 난다 긴다 하는 집 아이들만 모이는 곳에서 평범한 회사원 아버지를 둔 최 대표는 자신과 그들의 격차를 계속 실감하게 됐다.

그는 “그들과 나의 다른 점을 고민해보니 할아버지 혹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격차가 벌어지더라”며 “생산수단을 가진 자와 생산수단의 일부인 사람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초등학생에겐 다소 버거울 만한 수준 높은 문제의식은 그가 중학교에 가면서 더 큰 목표로 발전했다. 아버지처럼 생산수단의 일부가 아닌 생산수단을 가진 사람으로 살겠다는 것. 그래서 회사원이 아닌 사업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들어갈 수 있는 수능 점수를 받았는데도 경영학과를 선택한 이유다.

그러나 막상 경영학과에서 배운 것은 자본 없는 소유는 불가능하다는 ‘진리’ 혹은 ‘무력감’이었다. 이에 학과 공부는 손을 놓다시피 하고 학교 앞 책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우연히 지금 그의 응접실에 자리 잡은 가치투자 원로들의 고전과 만나게 된다.

책 속에서 그들은 “큰돈 들여 무에서 유를 창출할 필요 없이 이미 있는 생산수단 일부를 주식을 통해 차지하면 된다”고 설파했다. 스물한 살 최준철과 서초 사옥에서 인터뷰 중인 최준철이 동시에 자기 무릎을 탁 치는 듯했다.

본격적으로 그는 객장에 나가 투자하기 시작했다. 군 복무 시절에는 틈날 때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로 기업 재무제표를 파헤치며 투자전문가로서의 초행길을 걷기 시작했다. 전자공시는 그에게 한 줄기 빛 같은 존재였다. 그는 전자공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는 정말 보물창고 같은 곳이었다. 전자공시 이전에는 기업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었는데 전자공시 덕분에 기업을 속속들이 알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 이후는 잘 알려진 대로다. 지금 함께 VIP를 이끄는 김민국 대표를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처음 알게 됐고, 함께 가치투자 동아리를 일구며 적극적으로 ‘대형사고’를 쳤다. 대학교 3학년 재학 중 동아리 교재로 쓸 책자를 만들 바에야 누구나 돈 주고 살 만한 책을 출간했고(한국형 가치투자 전략, 2002), 이왕 교내회보를 제작할 거라면 증권가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신문을 발행했다(대학경제신문). 대학교 4학년 때인 2003년 8월에는 투자자문사를 설립해 100억원이 넘는 돈을 운용하며 지금의 회사로 키웠다.

◇“꽃길은 꽃길 아니고 죽음의 길은 죽음의 길 아니더라”=VIP투자자문 설립 5년 만인 2007년, 이미 수익률은 300%를 넘어섰다. 승승장구하던 상황에서도 당시 장이 과열됐다고 판단해 VIP는 매수를 중단했다. 당시 갓 서른을 넘긴 나이였지만 최 대표와 김 대표가 신중하게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나 고객들의 항의, 그리고 이로 인한 운용진의 위기의식으로 종목 편입 중단 6개월 만에 매수를 재개했다. 그리고 이내 2008년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최 대표는 아찔한 패배를 맛봐야 했다. 그해 VIP의 수익률은 마이너스 30%로 돌아섰다. 자문사 설립 후 처음으로 고객 자산에 손실을 입혔다.

그는 “다른 것보다 고객 자산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컸다”며 “미치도록 팔고 싶을 때 혹은 사고 싶을 때 그 유혹을 잘 넘기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지난 실패를 곱씹었다. 또한 “돌아보면 꽃길은 꽃길이 아니고 죽음의 길은 죽음의 길이 아니더라”는 고승의 깨달음 같은 말을 했다. 끝까지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교훈이 오롯이 그에게 남았다.

그가 말하는 가치투자의 원칙은 ‘저위험ㆍ적정수익’이다. 요즘 유행하는 중위험ㆍ중수익보다도 훨씬 안정성을 지향한다.

그는 설명 도중 양팔을 좌우로 쭉 벌린 후 “가치투자의 기본은 같지만 지향점에서 다소 간격이 있다”며 “가치투자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자신이 가격과 장래성(퀄리티) 둘 중 무엇을 우선시하느냐에 따라 운용사와 상품 스타일을 고르면 된다”고 조언했다.

최 대표는 “VIP는 기본적으로 중립적인 성향이지만 저는 장래성 쪽에 조금 더 치중해 VIP(G)펀드를, 김 대표는 가격에 더 중점을 둬 VIP(V)펀드를 맡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국내에서 가치투자자로 알려진 이들은 ‘같은 듯 다른 투자철학’을 갖고 있다. 안정성과 성장성에 대한 가중치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주총에 갈 필요 없는 기업을 찾아라=가치투자에 대한 최 대표의 설명은 군더더기 없이 명료하지만, 실제 가치투자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숫자와 압축어로 가득한 재무제표, 산업 동향, CEO 이력 등 다양한 자료를 통해 기업의 가능성을 점치는 일은 VIP 내부 전문가들도 몇 날 며칠 머리를 싸매고 함께 고민해야 겨우 가능하다. 많은 개인투자자들이 가치투자에 대해서 “공자님 말씀처럼 뜬구름 잡는 소리”라며 고깝게 보는 이유다. 그중 일부는 가치투자 같은 장기계획은 본질적으로 개인투자자의 시간적ㆍ물적 역량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개인투자자들이 호재를 찾아다니거나 챠트 분석에 의존하는 모멘텀 투자에 매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말 가치투자는 개인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일까? 최 대표는 “과거와 비교해 가치투자를 개인이 직접 하려면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멘텀 투자가 대안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무리한 위험을 애써 외면하고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것은 그저 ‘욕심’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는 특히 “한국 투자자들이 어느 종목에 투자를 결정하기까지 큰 품을 들이지 않을 뿐더러 지분을 보유하고 있을 때에도 해당 기업 경영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다행히 최근 기관의 목소리가 전보다 강화되고 전자투표제와 토크 콘서트형 주주총회 도입 등 투자 문화 개선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최 대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다.

그는 “364일 잘못하다가 주총일 하루 잘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 평소에 잘해서 주총에 굳이 갈 필요 없게 하는 회사가 좋은 투자처”라며 “주주를 진짜 파트너로 생각하고 주주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정신이 기저에 없다면 아무리 주총을 멋지게 꾸며도 그저 하루 쇼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내일 출국합니다. 숨은 원석 찾아야죠.”=지난 8일 최준철 대표는 홍콩 출장을 위해 출국했다. 지난 2012년부터 홍콩 페더스트리트투자자문과 운영 중인 ‘아시아그로스펀드’ 등 해외펀드에 편입할 종목을 직접 눈으로 보고 고르기 위해서다. ‘돈을 맡긴 고객에게 대충 쇼하지 않기 위해’ 최 대표는 펀드에 편입될 종목을 직접 살피기 위해 발품을 팔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어묵 공장, 대만의 서버용 슬라이드 기업 등 단 며칠의 출장 중에도 열댓 개 이상의 기업을 직접 찾아 투자처로 적절한지 판단한다.

그는 “최근 해외투자는 지난 2007년 중국, 베트남 그리고 현재 중국 본토처럼 활황세가 나타나는 국가를 찍어 대박 수익률을 올리는 방식으로 왜곡돼 나타나고 있다”며 “건전한 투자가 아니라 투기 형태에 가깝다”고 우려를 제기했다.

가치투자 원칙은 해외투자에도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최 대표의 신념이다. 그가 생각하는 해외투자의 올바른 방향은 한국 주식으로만 구성된 포트폴리오에서 부족한 성장성을 보강하고 지역을 분산하는 형태다. 이는 미국 투자자들이 글로벌 펀드나 인터내셔널 펀드에 가입하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지난 10일 추가 인터뷰를 위해 최 대표에게 연락했을 때 그는 밤 12시(한국 시간)에 홍콩에서 이메일로 답을 보내왔다. 그는 “오늘 한 회사를 알아보려고 홍콩에서 국경을 건너 광저우로 들어가 택시 타고 이동해 1시간 30분간 미팅하고 돌아왔다”며 “국가를 구분하지 않고 좋은 기업을 발굴해 테마나 국가 위주의 해외투자를 탈피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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