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투자 세미나]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주식=도박? 교육부터 잘못… 리스크 없는 투자 없다”

입력 2015-04-1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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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들 차 살게 아니라 그 돈으로 투자·인생설계 할때… 노후 위해 소득 5~10% 주식을

▲서울 종로구 계동 북촌 사옥에서 만난 존 리 대표가 주식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세영 기자 photothink@
북적이는 여의도를 떠나 도착한 북촌, 봄을 만끽하기도 전에 한적한 이곳에서 수조원의 돈이 오가는 회사의 간판을 보는 것은 생각만큼 낯설었다. 존 리 대표가 이끌고 있는 메리츠자산운용이 자리잡은 곳은 여의도가 아닌 북촌이다.

2014년 1월, 20년 동안 함께했던 팀원들과 함께 메리츠자산운용에 둥지를 튼 그는 ‘꼴지의 반란’을 시작했다. 간단했다. 좋은 주식을 매입해서 오래 가지고 있으면 돈을 번다는 철학이었다. 무엇보다 수직적인 회사 분위기와 문화를 바꾸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 자신의 할 일을 찾는 회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9개월 후, 60여개나 되는 자산운용사 중에서 꼴찌를 하던 메리츠자산운용은 수익률 1위의 회사로 우뚝 섰다.

사실 존 리 대표는 수익률 1위에는 관심이 없다. 당장 내일이라도 꼴찌가 될 수 있다는 심정으로 안주하지 않는다. 고객 중심의 자산운용사로 거듭나기 위해 펀드 매니저 교육에 더욱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투자한 기업을 탐방한다.

존 리 대표는 경험있는 사람은 뽑지 않는다. 가능성 있는 사람을 채용해 20년간 함께해 온 팀의 철학을 교육시킨다. 팀이 사라지더라도 일관된 철학을 바탕으로 훈련된 사람들이 남아 고객의 자산을 운용하겠다는 취지다. 고객의 신뢰를 사겠다는 것이다.

진심은 통했다. 이러저러한 각종 테마펀드를 비롯해 번잡하게 진열된 상품들을 모두 정리해버렸다. 그리고 ‘메리츠코리아펀드’로 통일했다. 뚝심있는 그의 투자 철학에 기관투자자들도 단골 고객이 됐다. 제대로된 사람을 만났다는 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메리츠자산운용이 내놓은 상품을 팔게 해달라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장기 투자의 중요성에 대해 사람들이 서서히 눈을 뜨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존 리 대표는 전했다. 올해는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에 투자할 수 있는 펀드를 구상하고 있다.

존 리 대표의 삶의 방식이 그랬다. 그는 늘 새로운 도전을 즐겼다.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낯섦’을 매수하고 ‘익숙함’을 매도하며 성장했다. 주식을 장기보유하며 가치를 높이는 투자철학과 그의 인생운용 철학은 철저히 달랐다.

◇무모한 도전 그리고 운명 같은 사람을 만나다 = “집안 분위기도 자유분방했고 어머니도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셨다. 사실 대학에 가서도 엄청 놀았다. 연세대 경제학과만 졸업하면 취업이 보장되던 시대였기도 했고…”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기도 했지만 존 리 대표가 젊었을 땐 지금처럼 답답한 ‘취업지옥’ 시대는 아니었다. 대학 시절 그는 대기업에 입사한 선배들의 삶을 엿보게 됐다. 신입직원에서 이사에 이르기까지 서열대로 책상을 배치한 사무실을 보고 숨이 막혔다. 맨 앞줄 책상에서 맨 뒷줄 책상까지 가는 데만 30년이 걸리던 시절이었다. 그는 그 다음날 바로 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했다. 명문대를 스스로 자퇴하는 그를 주변에서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돌아올 다리를 폭파시키듯 휴학계가 아닌 자퇴서를 던지고 미국으로 떠났다. 1980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뉴욕대 회계학과에 입학했다. 덜컥 신입생이 되고 나니 등록금이 문제였다. 그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누나가 미국에 있어서 도와줄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웬걸 누나는 나한테 ‘내가 너를 도와줘야 하는 이유를 대봐라’며 냉정하게 거절했다. 미국식 사고방식을 처음 알게 된 사건”이라며 “생활비를 벌기 위해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가진 직업이 30개가 넘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의 경험을 통해 기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떤 기업이 좋은 기업인지 알게 됐던 것 같다”며 “가장 무모한 도전이었던 일은 학교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전화받는 업무였다. 영어를 잘 못하던 내가 전 세계에서 걸려오는 문의 전화를 받았으니… 그렇게 부딪히며 일했고 두려움도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졸업 후 존 리 대표는 세계적인 회계법인인 KPMG에 취직해 7년간 일했다. 이때 투자에 조금씩 눈을 떴다. 그리고 자퇴서를 던지듯 또 다시 도전을 감행한다. 회계법인에 근무할 당시 같은 건물에 ‘스커더스티븐스&클라이크’사( 社)가 있었다. 펀드 매니저를 꿈꿨던 그는 스커드가 ‘코리아 펀드’를 운용한다는 말에 문을 두드렸다.

존 리 대표는 “스커드에 근무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하버드, MIT 등 명문대생이었다. 모두가 뉴욕대 출신인 나에게 도전할 필요도 없다고 조언했었다”며 “잃을 것도 없기에 스커드에 전화해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일을 시작하게 됐고 니콜러스 브랫이라는 운명적인 사람을 거기서 만났다”고 말했다.

스커드는 존 리 대표에게 영향을 준 회사다. 투자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주었고, ‘주식은 파는 게 아니라 사는 것’이라는 논리를 일깨워 준 곳이다.

그는 “투자의 대가들이었고 돈을 많이 벌어도 겸손했다”며 “스커드에서 배웠던 기업문화를 메리츠자산운용에서 재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스커드는 설립 당시 규칙을 만들었는데 대표의 자녀를 회사에 입사시키지 않고, 설립자라 하더라도 은퇴할 때 자식에게 상속이 안되게 한다는 규칙이 있었다”며 “자식이 아니라 가장 똑똑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스커드투자자문이 도이치뱅크에 인수되면서 동료들과 함께 회사를 떠나 2005년 라자드자산운용으로 자리를 옮겼다. 도이치뱅크로 인수되면서 투자 철학도 달랐졌기 때문이다.

◇한국 증시의 희망적 미래 그리고 ‘왜 주식인가’ = 존 리 대표는 저서 ‘왜 주식인가’에서 운명의 보스인 니콜러스 브랫을 ‘한국의 미래에 대한 무한한 낙관론자’로 설명하고 있다. 코리아펀드를 설립한 니콜러스 브랫은 한국 사람들의 부지런함에 매료됐고, 이 때문에 한국의 장래가 희망적이라는 입장을 가진 투자가였다.

존 리 대표는 “한국은 경제 성장률이 떨어졌다. 수출이 안된다 등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고, 부정적인 생각이 지배하고 있다”며 “하지만 지금이 투자하기 가장 좋을 때다. 바닥권에서는 올라갈 일밖에 없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코스피 지수의 경우 대기업 위주의 구성 때문에 올라가지 않는 것이다”라며 “한국 대기업은 중국에 치여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독자적으로 자생할 수 있는 글로벌 강소기업들을 찾아 다닌다. 대기업과 상관없이 독자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들이 많고 그런 기업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메리츠자산운용의 이러한 투자 방식을 국내에서는 가치투자라고 명명한다. 존 리 대표는 “한국에서는 자꾸 ‘가치투자’란 프레임으로 메리츠를 가두고 있는데, 사실 가치라는 것은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존 리 대표에 따르면 가치주(value stock)은 굉장히 지루한 회사에 투자하는 것이다. 성장성은 없지만 배당금이 꼬박꼬박 나오는 회사다. 성장주(growth stock)는 회사가 현재는 위태로워보이지만 성장성이 보여 투자를 하는 것이다.

그는 “가치 없는 곳에 투자하는 펀드는 어디에도 없다”며 “마케팅을 위해 ‘가치’를 쓰는데 우리의 방식은 가치투자가 아니라 ‘베스트 아이디어(Best idea)”라고 설명했다.

한국 증시를 긍정적으로 전망한 존 리 대표는 특히 젊은이들에게 주식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주식=도박=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의 문화, 주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는 대학의 교육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그는 “부자되는 습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자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 중 ‘없다’에 베팅하고 있다”며 “젊은이들이 좋은 차를 살 게 아니라 그 돈으로 주식을 사고 자신의 인생을 설계해야 하는데 미리 포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어떻게든 되겠지’란 마인드라 돈을 써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소득의 5~10%를 주식에 투자해보자. 자본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매수 후 주가의 등락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원금보장’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한국에서는 원금이 손실되는 것을 위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투자라는 것은 항상 리스크가 동반되고 거기에 보상금이 있는 것이다. 60세에 찾는다고 생각하고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리스크를 피하는 것은 투자가 아니다”고 조언했다.

◇메리츠자산운용과의 운명 같은 만남… 직장의 의미 = 존 리 대표와 메리츠자산운용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2014년 1월 당시 메리츠자산운용은 업계 꼴찌였다. 회사는 새로운 변화를 하든, 회사를 포기하든 결정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래서 컨설팅을 받았고, 그 결과 한두 명의 변화가 아닌 외국회사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을 수혈해 회사를 뜯어 고쳐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메리츠는 존 리 대표를 필요로 했다.

그는 “당시 라자드에서 근무 중이었는데 마침 나도 한국에 진출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시기였다”며 “한국 펀드마켓도 엉망이고 투자 문화가 너무 단기적이었다. 그것을 바꾸고 싶었고, 스커드에서 배웠던 것을 한국에서 재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60개 가량되는 한국의 자산운용사를 쭉 훑어보고 결정한 게 메리츠자산운용이었다”며 “성적도 좋지 않고 너무 특징이 없는 회사였기 때문에 선택했다. 꼴찌를 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꼴찌니까 절박하게 변화를 하려고 할 것 같았고 마침 메리츠에서 연락이 왔다”고 전했다.

메리츠에 오자마자 존 리 대표는 사옥부터 북촌으로 옮겼다. 그는 “투자가들은 메리츠자산운용이 메리츠화재 건물에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떠나버린다. 자산운용사가 독립되어 있지 않으면 투자자의 이익와 회사의 이익이 상충할 때 회사의 이익을 선택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립성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임기 보장 조건도 없었다. 그는 “임기 보장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지극히 한국적인 마인드”라며 “대표 임기가 있다는 것이 한국 금융업의 걸림돌이다. 퍼포먼스가 나쁘고 회사가 나쁜 방향으로 가면 회사에서 대표인 나를 해고시킬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별 문제가 없고 잘 하고 있다면 계속 맡아서 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투자회사가 미국처럼 발전하려면 임기가 없어야 하고 언제든지 자를 수도, 계속 갈 수도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사옥 이전과 함께 점수로 업무평가를 하던 것을 없애버렸다. 그는 “사람을 점수화하는 것이 가장 바보 같은 일”이라며 “회사 문화를 바꾸니 직원들도 매일매일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한다”고 말했다.

기존의 포트폴리오도 다 바꿨다. 600억원의 규모였기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고 현재는 1조2000억원의 규모로 운용 사이즈가 커졌다. 하지만 더이상 규모가 커지지 않도록 할 예정이다. 올해는 해외펀드를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중국 파트너를 구하고 있다. 향후 아시아·미국·유럽 등도 파트너십을 통해 진출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존 리 대표는 펀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 노후를 책임지는 도구다. 그 도구를 잘 굴려야 한다. 내가 메리츠에서 사라져도 우리가 트레이닝시킨 펀드매니저들이 같은 노하우로 계속 펀드를 운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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