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人맥] 사외이사 10명 중 3명 관피아… ‘적폐’인가 ‘적임’인가

입력 2015-04-15 10:39 수정 2015-04-1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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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곳 사외이사, 관료 출신 53명…KB사태 등 폐해 드러나자 모범규준 만들었지만 유명무실

세월호 참사 이후 관료 출신을 뜻하는 ‘관피아(관료+마피아)’의 낙하산 관행에 제동이 걸렸지만, 모뉴엘과 KB금융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금융권 곳곳에서 ‘관피아’의 후유증은 현재 진행형이다. 관피아에 대한 거센 비판 여론으로 인해 금융권 전반에서 관피아 퇴조 현상이 진행되고 있지만 사람만 바뀌었지, 여전히 금융당국의 관여도가 높은 새로운 형태의 관치금융이 싹트고 있다.

현재 금융권 사외이사 10명 중 3명은 여전히 관료 출신이다. 올해 주주총회를 끝낸 43개 금융회사의 사외이사 변동 현황을 살펴보면 학계 출신은 62명에서 66명으로, 재계 출신은 34명에서 42명으로 늘었다. 관료 출신은 전년과 같은 53명에 그쳤지만 여전히 학계 출신 다음으로 많았다.

◇관피아 득세 여전… 퇴직관료 재취업 변화 없어 =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도입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에 명시된 사외이사의 자격기준은 금융, 경제, 경영, 회계 및 법률 등 관련 분야에서 충분한 실무경험이나 전문지식을 보유한 자다. 지난해 회장과 행장이 갈등을 빚은 KB금융 사태 당시 사외이사들이 제 역할을 못했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지배구조 모범규준은 사외이사 선임시 경험과 전문성을 따져볼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같은 모범규준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사외이사들의 면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금융당국이 인사 적체 해소 등을 이유로 사실상 퇴직관료 재취업에 적극 나서는 터라 관료출신 고위퇴직자들의 재취업이 다시 속속 이뤄질 전망이다. 특히 농협금융지주는 지난달 이사회 개편이 단행됐지만 낙하산 논란을 비켜가지는 못했다. 정부의 입김이 센 곳인 탓에 대부분이 관피아나 정피아 인사들로 채워졌다. 현정택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도 올 2월까지 농협금융 이사회 의장을 역임했으며, 김준규 전 검찰총장, 손상호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전홍렬 전 금감원 부원장도 사외이사로 있다. 금융권에서 사외이사 전원이 관료·당국 출신인 곳은 농협금융이 유일하다.

우리은행의 경우 신규 사외이사 후보 4명 중 3명이 정치권과 관련이 있다. 정한기 호서대 교양학부 교수는 2012년 19대 총선 때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에 공천 신청을 했으며 홍일화 우먼앤피플 고문은 한나라당 부대변인을 지냈다. 천혜숙 청주대 교수의 남편은 이승훈 청주시장(새누리당)이다.

보험권 역시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동부화재는 전 관세청장, 재무부 차관, 보험감독원장을 지낸 이수휴 사외이사를 재선임했다. 이 사외이사는 감사위원(사외이사)으로 내정됐다. 한화손해보험은 김성호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롯데손해보험은 이광범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을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삼성생명은 옛 재무부 출신인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한화생명은 창원지법 판사 출신인 오재원 변호사를 선임키로 했다.

◇모뉴엘·KB금융사태, 관피아 적폐 드러나 = 지난해 7년간 3조4000억원대 사기 대출을 받고 돌려막기를 한 가전업체 모뉴엘의 민낯이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여기에는 금융권 관피아의 적폐 또한 여실히 드러났다. 모뉴엘의 협력업체와 허위 고문계약을 체결해 매달 고문료 명목으로 뇌물을 건네거나 국책금융기관 직원의 자녀를 모뉴엘 사원으로 취업시켜 주는 등 관피아의 전형을 보여준 사례다.

또한 관치금융으로 초유의 내분 사태를 겪은 KB금융은 그동안 금융권에 제기됐던 관피아 문제를 그대로 드러냈다. 임영록 전 회장과 이건호 전 행장 간의 마찰 중심에는 ‘관피아’ 낙하산 문제도 찾을 수 있다. 이후 벌어진 KB금융 징계 시도 과정에서 금융당국의 지나친 개입까지 맞물려 KB사태는 관치금융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임 전 회장은 행시 20회로 대표적인 관피아(재무부+마피아) 출신이다.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과 차관을 지낸 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KB금융 사장에 선임됐다.

한편 관피아 방지법으로 알려진 공직자윤리법 개정안 시행을 두고 전문성 있는 관피아의 금융권 진입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과 금융산업에 부작용만 초래한다는 반론이 맞서고 있다. 무엇보다 관피아나 금피아 출신 인사들의 빈자리에 이른바 ‘정피아(정치권 인사와 마피아의 합성어)’들이 꿰차는 풍선효과가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관료와 민간 업체의 부정 결탁을 차단해야 하지만 능력 있는 관료들까지 무조건 재취업을 금지하는 것은 국가적인 낭비라는 지적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전임자인 신동규 전 회장이‘제갈공명이 와도 못 바꾼다’며 혀를 찬 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조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금융당국 수장으로 화려하게 컴백한 것도 이 같은 평가가 뒤따랐기 때문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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