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선능역 vs 설릉역

입력 2015-04-17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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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발 지하철이 가장 처음 탄생한 곳은 영국 런던이다. 1843년 템스강 터널이 개통된 직후 런던시 공무원 찰스 피어슨이 도시 교통 개선을 위해 땅속 기차를 만들자고 제의했다. 그로부터 20년 만인 1863년 증기기관차가 달리는 지하철도가 건설됐다. 곧이어 빈, 베를린, 파리의 지하에도 철도가 놓였다. 전철형 지하철은 1900년 파리를 시작으로 일본 도쿄 1927년, 평양 1973년, 서울에는 1974년 개통됐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기자는 매일 아침 ‘화장녀’를 만난다. 그녀는 자리에 앉으면 거울을 꺼내 기초부터 색조화장까지 한 후 양쪽 귓볼에 향수를 뿌리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그러곤 벌떡 일어나 출입문 유리를 전신거울 삼아 옷매무새를 살핀다. 남들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정말 ‘얼굴 두꺼운 여자’란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론 재미있다. 그런데 지하철 속 사람보다 더 재미있는 게 바로 지하철 역 이름이다.

당고개역(4호선)은 옛날 이 고개에 성황당과 미륵당이 있었던 데서 생긴 이름이다. 과천의 선바위역(4호선)은 개천 한가운데 바위가 서 있는 모습과 같아서 이름 지어졌다. 충정로에서 마포로 넘어가는 곳에 자리한 애오개역(5호선)은 ‘고개가 아이처럼 작다’는 뜻의 ‘아이고개’ ‘애고개’가 변형됐다는 설이 있다. 또 옛날 사대문 안의 시체는 한성부에서 서소문을 통해 내보냈는데 아이가 죽으면 이 고개를 넘어 묻게 했다는 데서 생겼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실제로 과거 애오개 인근에는 아이 무덤이 많았단다. 태어난 지 채 1년이 안 된 매를 가리키는 ‘보라매’에서 따온 보라매역(7호선)은 과거 대방동에 있던 공군사관학교의 상징물에서 유래했다. 샛강역(9호선)은 한강 본류에서 여의도를 휘감아 돌아 나오는 샛강에서 따온 이름이다.

우리 고유의 말이 남은 역 이름도 있다. 까치울역(7호선)은 ‘까치가 많은 마을’이라는 뜻의 ‘작동(鵲洞)’으로 불리다 우리말로 바뀌었다는 설과, ‘작다’는 의미의 순 우리말 ‘아치’가 ‘까치’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노들역(9호선)은 수양버들이 울창하고 백로가 노닐던 옛 노량진을 ‘노들’이라고 부르던 데서 유래했다. 강이나 바닷목에서 나룻배가 서는 곳을 뜻하는 ‘나루’는 잠실나루(2호선), 여의나루(5호선), 광나루(5호선) 등이 있다.

조선의 아홉 번째 임금 성종이 잠들어 있는 선릉(宣陵)에 가려면 선릉역(2호선)에서 내려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선릉의 발음 때문에 고심한다. 국립국어원은 ‘선릉’이라 쓰고 [설릉]으로 발음해야 한다고 밝혔다. ‘ㄴ’이 ‘ㄹ’의 앞이나 뒤에서 ‘ㄹ’로 발음해야 한다는 우리말 표준발음법 20항을 근거로 제시했다. 난로[날로], 신라[실라], 천리[철리], 광한루[광할루] 등이 대표적 단어다. 그런데 이 조항엔 예외가 있다. 생산량[생산냥], 결단력[결딴녁], 상견례[상견녜] 등의 사례처럼 ‘ㄹ’을 ‘ㄴ’으로 발음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릉도 [설릉]이 아니라 [선능]으로 발음해야 하지 않을까. 융건릉, 헌인릉, 원릉 등의 무덤을 융걸릉, 헌일릉, 월릉으로 발음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설릉이라 하면 자칫 혀 무덤[舌陵]으로 오해될 수도 있다.

이현복 서울대 명예교수의 ‘한국어 표준발음사전’에도 선릉은 [선능]으로 발음한다고 나와 있다. 표준발음법 20항의 예외로 본 것이다. 이호영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 또한 ‘국어음성학’에서 “다음의 합성어들은 화자에 따라 ‘ㄹ’이 ‘ㄴ’으로 발음되기도 하고 ‘ㄹ’로 발음되기도 하는데 ‘ㄴ’으로 발음되는 것이 표준”이라고 설명하며 그 사례로 음운론, 신문로와 함께 선릉을 제시했다.

국립국어원 ‘온라인 가나다’에는 선릉역 발음에 대한 질문이 90여 건 올라 있다. 한글학회 성기지 학술부장의 ‘맞춤법 사슬을 풀어주는 27개의 열쇠’를 인용해 등산로가 [등산노]이지 [등살로]가 아니듯 선릉도 [선능]이 맞지 않냐는 등의 질문이 눈에 띈다. 4대째 서울에 살고 있는 토박이 30명을 대상으로 선릉의 발음에 대해 질문한 결과 전원이 [설릉]은 잘못이라고 답한 조사자료도 존재한다. 이쯤되면 국어원은 선릉역의 발음과 관련해 좀 더 심층적인 연구를 해야 한다. 그래야 언중의 혼란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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