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까지 빠른 추격자 전략 아래 ‘할 수 있다!’ 정신으로 선진국이 간 길을 열심히 추격해 왔다. 이미 남들이 간 길을 따라가는 전략에서 실패는 무능 혹은 나태의 대명사로 나쁜 것이었다. 실패를 배제하기 위하여 우리는 수많은 사전 규제를 만들어 왔다. 언론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정부와 국회는 규제를 양산해 왔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것이 일류 국가 진입을 위한 창조경제 전략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실패는 너무나도 당연한 과정의 일부다. 한국의 국가 연구개발 성공률이 95% 수준이라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다. 실패는 새로운 프런티어 개척에 따르는 필수 과정이기 때문이다. 창조경제의 핵심 패러다임은 실패에 대한 가치관 정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패의 양면성은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실패는 나쁜 것인가? 실패를 없애려는 노력은 창조적 도전을 억누르고 실패를 허용하는 유연성은 조직의 기강을 해치고 있다. 우리는 실패를 억제해야 하는가? 지원해야 하는가? 그것이 문제다.
과거 필자가 설립한 기업에는 ‘도전을 위하여 실패를 지원한다’라는 표어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 젊은이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는 것이었다. 그 결과 수많은 의료산업의 혁신들이 탄생해 100여명의 기업가가 창업하고 그중 다수는 상장까지 달성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소위 적당히 묻어가는 사람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동일한 실패를 반복하고 태연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심지어 모두가 동의한 약속을 어기고 실패에 대한 지원을 부르짖는 과도하게 용감한 사람들도 존재했다. 바로 이 시점에서 기존의 기업에 있던 관리자들이 보수 회귀의 반론을 제기했다. 실패는 없애기 위해 일벌백계의 신상필벌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장시간의 토론에 임했다.
토론의 결론은 ‘도전에 의한 실패는 지원하고, 경계에 대한 실패는 징벌한다’는 것이었다. 모든 실패가 동일한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최선을 다한 도전의 실패는 가치 있는 실패다. 부주의한 경계에 의한 실패는 가치가 없는 실패다. 그렇다면 도전에 의한 실패와 경계에 의한 실패를 분류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 된다. 반복되는 실패 혹은 모럴 해저드에 의한 실패는 당연히 경계의 실패다. KTX 표 검사 시 10배의 과징금을 부과하듯 이 같은 명백한 경계의 실패는 조직의 신뢰를 무너뜨리므로 더욱 강한 징벌을 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경우 도전과 경계의 분리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도전에 객관적 잣대라는 규정을 만드는 것은 불합리한 접근법이다. 그래서 도출된 결론이 학습할 것이 있으면 도전의 실패이고 학습할 것이 없으면 경계의 실패라는 것이었다. 학습의 유무는 여러 사람들이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Peer Review로 대부분 이루어진다. 따라서 관계되는 사람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조직의 인프라가 된다.
톰 피터스는 우수 조직의 특징으로 ‘느슨함과 엄격함의 공존’을 강조했다. 창조적 도전을 허용하는 느슨함과 나태한 경계를 지양하는 엄격함이 혁신과 효율을 선순환시킨다.
규제를 풀면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에 의한 부작용이 발생한다. 그러면 규제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다시 규제가 강화되는 보수 회귀 현상이 나타난다. 규제라는 시스템이 아니라 실패라는 조직 활동에서 창조경제의 방향을 찾아야 할 것이다. 좋은 실패와 나쁜 실패, 그것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