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배우들의 현실 알려준 ‘여자를 울려’ 김근홍 감독의 한마디 [오예린의 어퍼컷]

입력 2015-04-20 11:01 수정 2015-04-2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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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노진환 기자 myfixer@)

“2월 신인배우 200명 기성연기자 80명 총 280명과 오디션을 치루며 8명의 배우들이 지금 저 자리까지 왔습니다. MBC 자체제작 드라마이기 때문에 이 분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기자님들께 부탁드리건데 혹시 이 분들이 화면상 못하는 건 저의 부덕함의 소치일 것입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잘하고 있으니 우리 드라마에서 저 8명의 신인배우들이 좋은 반응을 보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14일 열린 MBC 새 주말드라마 ‘여자를 울려’ 제작발표회에는 유독 많은 배우들이 포토월에 올라 포즈를 취했다. 이 중 대다수는 얼굴을 모르는 신인배우였다. 보통 주조연급 극의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배우들만 오르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나는 제작발표회 말미에 포토월에 올랐던 많은 신인배우들을 언급하며 ‘하청옥 작가 전작에서도 신인배우 박서준과 백진희가 주목을 받았다. 많은 신인 배우들이 포토월에 올랐는데 이 중에서 시청자가 주목해서 봐줬으면 하는 배역이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연출을 맡은 김근홍 감독은 내게 신인배우들을 언급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이후 김 감독은 신인 배우 한 명 한 명을 모두 언급하며 그들이 이 자리까지 올라오게된 힘든 과정들과 맡은 역할들을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내게 이 장면은 근래 참석했던 제작발표회 중 가장 인상깊었다.

김근홍 감독의 말 속에는 우리나라 신인 배우들의 실태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우선 TV에 얼굴을 알리는 배우가 되기까지는 정말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연예인 지망생 100만명 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대중이 TV에서 볼 수 있는 연예인은 꿈꾸는 100만명 중 0.1%에도 못미친다. 김근홍 감독이 소개한 신인 배우들 중에서는 한예종 출신으로 극단을 운영중인 진선규, 6년 째 신인 배우를 하고 있는 지일주 등이 있다. 오랫동안 배우로서 한 길을 걸어왔지만 이들 역시도 TV 드라마의 한 배역을 맡기 위해 280명들의 경쟁자들과 6번의 오디션을 보며 한걸음, 한걸음씩 올라온 것이다.

또한 ‘MBC 자체 제작 드라마이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도 현재 신인 배우들의 실태를 말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무편성 비율을 법적으로 정해 놓았지만, 실제 방송사 프로그램의 외주제작 비율은 약 70~80% 정도다. 외주 제작 드라마는 열악하고 척박한 제작 환경 속에 제작되기 때문에 드라마의 흥행 부담이 더욱 크다. 이 때문에 아무래도 대중에게 알려지고 익숙한 배우를 선택하기 마련이다. 가뜩이나 좁은 자리에 유명 기획사 출신 신인배우나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까지 이들의 자리를 빼앗고 있어 설 자리는 매우 좁다.

수도권 소재 상위권 대학 연영과 입학 경쟁률을 살펴보면 수백 대 1 정도는 가볍게 넘기는 곳이 많다. 이처럼 연예인이 되길 희망하는 지망생들의 숫자는 점점 증가하면서 그만큼 성공할 수 있는 기회의 문턱이 좁아지고 치열해졌다. 이에 자신을 알리기 위해 성형을 하거나 혹은 성상납을 하는 등의 방법들을 이용하는 신인 배우들도 많다. 2009년 3월 7일 경기도 성남 분당 자택에서 술접대, 성상납 강요 등 한국 연예계의 실태를 밝힌 문건을 남기고 목숨을 끊은 장자연의 사건은 당시 우리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는 그녀의 외침은 많은 신인배우들이 현재에도 맞닥뜨리고 있는 만연한 문제다.

오랜 무명기간 동안 재정적 문제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배우도 다수 존재한다. 단역배우 우봉식은 지난해 4월 자신의 월셋집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2001년 유명 고추장 CF에서 비빔밥을 비벼 먹는 남자로 단독 출연해 얼굴을 알리기도 했고 2007년에는 KBS 1TV 드라마 ‘대조영’에서 팔보 역을 맡아 출연했다. 하지만 ‘대조영’이후 이렇다 할 배역을 맡지 못해 인테리어 일용직 노동자로 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신인 배우 정아율도 2012년 6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정아율의 어머니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아율이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 10원도 벌지 못했고 죽기 전 군대에 있는 남동생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이들에게는 가장 시급한 것은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제작 시스템에 밀려,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에 밀려, 유명 기획사 소속들에게 밀려 실력이 출중한데도 불구하고 배우를 꿈꾸다 날개가 꺾여버린 수많은 신인들이 있다. 이들의 현실을 알아주고 그 부당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김근홍 감독의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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