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러시아 목조르기에 나섰다. EU는 러시아 국영가스업체 가스프롬을 중유럽과 동유럽에서의 반독점 위반 혐의로 공식 제소했다고 22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마그레테 베스타거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은 “가스프롬이 중·동부 유럽에서 시장 지배적인 지위를 남용해 불공정한 가격 결정과 가스공급 방해 등 경쟁을 저해했다”며 “이에 회사를 정식으로 제소한다”고 밝혔다.
EU 집행위원회(EC)는 지난 2012년 9월부터 가스프롬 반독점 위반 행위를 조사해왔다. EU가 가스프롬의 독점 행위로 피해를 봤다고 지목한 국가는 헝가리 체코 불가리아 폴란드 슬로바키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이다.
EU의 가스프롬 제소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고조된 양측의 긴장과 갈등에 방점을 찍었다는 평가다. 반독점 사안이 끝나기까지는 수년의 시간이 걸리지만 가스프롬은 이날 성명에서 “제소는 근거 없는 것”이라며 “우리는 모든 형태의 국제법과 현지법을 준수했으며 가격 책정은 다른 공급업체들이 EU 국가에 한 것과 같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베스타커 집행위원은 지난주 미국 구글을 반독점으로 제소한 데 이어 이번에 EU 이외 나라의 국영기업을 공격하는 등 일제 포화를 퍼붓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베스타거는 “유럽시장에서 사업하는 모든 기업은 유럽 소속이든 아니든 EU의 규정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EU는 반독점 위반으로 걸린 회사에 전체 글로벌 매출의 10%를 벌금으로 부과할 수 있다. 이에 가스프롬이 낼 벌금은 100억 유로(약 11조6300억원)에 달할 수 있다. 다만 실제로 낼 벌금은 이보다는 훨씬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EU의 이번 제소로 에너지 부문에서 양측의 결별 행보가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사실 가스프롬과 EU는 뗄래야 뗄 수 없을 정도로 아직도 서로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FT에 따르면 EU 천연가스 소비량의 약 30%를 가스프롬이 차지하고 있다. 한편 가스프롬의 가스 부문 매출 60% 이상은 EU로부터 온다.
그러나 EU는 러시아 대신에 카스피해 연안 국가와 중동, 북미 등 수입선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러시아도 흑해를 지나 유럽으로 이어지는 ‘사우스스트림’ 가스관 계획을 폐기하고 터키를 경유하는 ‘터키스트림’ 건설로 돌아섰다. 중국과도 지난해 30년간 약 4000억 달러의 가스를 공급한다는 계약을 맺었다.
다만 양측의 서로에 대한 의존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FT는 내다봤다. 아직 서로를 대체할만한 상대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 가스프롬의 중국 매출은 가스관이 완공되는 2020년대에서야 본격화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