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소재부품특별법 발효에 부쳐

입력 2015-04-2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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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군침을 돌게 하는 각종 진수성찬들이 많으면 어느새 쌀밥은 ‘찬밥’ 취급을 받기 일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느샌가 따뜻한 밥 한 공기와 김치가 그리워지는 한국인이다. 이처럼 쌀은 ‘밥심’의 원동력이자 한국적 식문화를 이루는 근간이다.

우리의 산업에도 이런 ‘쌀’ 같은 존재가 있다. 바로 소재부품 분야다. 모든 산업의 기초를 이루기 때문이다. 소재부품은 최종재인 완제품의 생산을 위해 사용되는 중간재의 일종이다. 소재부품은 그 제품의 본질적인 경쟁력과 직결되는 요소이기 때문에 좋은 소재부품을 개발하면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은 미래산업의 경쟁력이 소재부품에 달려 있다고 보고, 소재부품의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개별 기업이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국가 미래 전략의 일환으로 소재부품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1970년대 경제발전 초기에는 주로 조립가공 방식의 수출에 의존해 성장했지만, 2001년 ‘부품소재 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하 부품소재특별법)’을 제정하면서부터 소재부품 산업을 본격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소재부품 산업의 발전 기반을 조성하고 관련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법은 효력 10년의 한시적 특별법으로 제정됐다가 다시 2021년까지 연장됐다. 특히 지난 1월에는 ‘부품소재특별법’에서 ‘소재부품특별법’으로 이름을 바꾸는 내용의 개정안이 공포됐으며, 오늘(29일) 발효된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일견 ‘소재’와 ‘부품’이라는 단어가 서로 자리바꿈을 한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도는 단순하지 않다. 우리의 산업 밸류체인을 소재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 노력 끝에 우리의 소재부품 산업은 지난해 연간 무역흑자 1078억 달러를 기록, 사상 최초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흑자로 전환된 지 17년 만에 달성한 소중한 성과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의 전자부품, 정밀부품 분야가 무역흑자를 이끈 덕분이다. 반면 전체 무역흑자에서 소재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그친다. 제품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원천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 파워로 이동하면서 첨단 소재가 더욱 중요해지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소재 분야 경쟁력은 부품에 비해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번에 특별법의 이름과 법률상 용어를 변경한 것은 정책의 무게중심을 소재로 옮김으로써, 미래에 대응하는 우리의 역량을 보다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소관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도 지난 2013년부터 부품소재총괄과의 명칭을 소재부품정책과로 바꾸고 소재부품산업정책관을 신설하여 ‘소재’를 정책의 우선 순위에 올렸다.

오늘 발효되는 특별법에는 명칭 변경 외에 신뢰성 인증제도를 정부 주도에서 민간 자율로 전환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신뢰성은 제품을 고장이나 성능 저하 없이 오래 쓸 수 있는 정도를 말한다. 지금까지는 제품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국가가 직접 신뢰성 인증제도를 운영해 왔는데, 앞으로는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신뢰성을 평가하고 인증하는 방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기업이 인증에 들이는 비용이나 시간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소재부품 산업은 선진국형 산업구조를 구축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미래성장 동력이자 기간산업이다. 하지만, 연구개발(R&D)에 대규모 투자금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기업이 혼자서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정부가 특별법을 통해 집중 육성에 나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간·기업간 치열한 경쟁 속에서 미래를 무작정 낙관할 수는 없지만,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감성을 자극하는 소재부품, 신뢰성을 한층 높인 소재부품 등으로 차별화한다면 우리 소재부품 산업도 지금보다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발효되는 특별법이 국내 소재부품 기업들의 체질 개선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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