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고고장 갈래?

입력 2015-04-2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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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시대, 그 뜨거웠던 젊은이들의 용광로

“곧 경찰이 들이닥쳐 임검(경찰의 단속)한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본인이 장발이거나 미니스커트를 입었거나 불순한 복장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신속하게 자리를 피해주세요.”

휘황찬란한 사이키 조명에 음악과 춤이 어우러져 광란의 시간을 보내던 중 DJ의 음성이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진다. 이내 고고장에는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고 장발을 휘날리며 여기저기 자리를 뜨는 젊은 남성이 늘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조금 놀아 봤다는 일명 ‘고돌이와 고순이’들은 주방에 숨기도 하고, 화장실에 몸을 은신하기도 한다. 그 시대 청춘들만 이해하는 웃지 못할 광경이다.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정해진 통행금지(통금)도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했다. 통금 때문에 자정이 가까워질수록 고고장은 휑해졌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청춘을 불태우던 사람들도 그 모습을 보고 부랴부랴 짐을 챙겨 떠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초저녁 불태우기’였다. 고고장이 열리는 초저녁에 들어와서 두세시간 화끈하게 놀고 가는 것이다. 고고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한 번쯤은 해봤을 만한 방법이다. 소위 말하는 ‘죽돌이나 죽순이’였다면 걱정 없이 밤새 발바닥을 비벼댔을 테지만. 이런 불편함(?)을 겪으면서도 격동기의 젊은이들이 고고장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고고장은 억압의 시대를 벗어날 수 있는 몇 개 안되는 탈출구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튀거나 혹은 화려하거나

“고고장에 간다고 하면 의상은 무조건 튀거나 화려해야죠.”

억압돼 있는 사회 분위기와는 달리 고고장 안에서의 의상은 매우 과감했다. 여성들은 판탈롱 스타킹이나 미니스커트, 나팔바지 등으로 자신의 몸매를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색깔도 가지각색. 특히 빨간색이나 노란색 등의 원색 의상들은 사이키 조명 아래에서 자신을 뽐내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남성들은 시대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었던 블루진을 선호했다. 그때는 가히 청바지 문화라고도 불릴 만했다. 청바지만의 거친 느낌과 빛바랜 바지의 색깔이 오묘한 조화를 이뤄 젊은이들의 세련미를 더해줬다. 또 청바지는 고고를 출 때 폼이 난다고 해서 ‘고고바지’로도 불렸는데 편안한 활동성과 멋에 고고장 의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블루스 한번 추시죠?

지금이야 클럽에서 젊은 남녀가 몸을 부비며 춤을 추지만, 그 당시 고고장은 그런 문화가 아니었다. ‘고고는 노터치’. 암묵적인 룰이었다. 술에 잔뜩 취해 여성의 몸에 손을 대며 불쾌하게 만드는 남성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남녀는 이성에 대한 신체 접촉을 자제했다.

괜히 피 끓는 청춘이겠는가? 신체 접촉이 적다고 해서 고고장 로맨스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주로 남성들이 먼저 여성에게 다가가 히야카시(ひやかし:이성에게 추파를 던지는 일, 당시 고고장에서 쓰이던 말이다)를 거는 일이 많았다.

고고 댄스를 추며 눈빛으로 여성에게 추파를 보내거나, 은근 슬쩍 다가가 이성에게 의중을 물으면서. “몇 분이서 오셨어요? 같이 합석해서 한잔 하실래요?” 그러나 애석하게도 합석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었다. 다섯 번 중 한 번이면 성공(?)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성공 못했다고 끝이 아니다. 비장의 무기이자 최후의 보루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고고 타임이 끝나고 음악이 감미롭게 바뀔 때 쯤 끊임없이 눈빛을 보냈던 이성의 팔목을 잡고 이야기한다.

“블루스 한번 추시죠?”

고고장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블루스 타임’이다. 블루스 타임은 열정을 잠깐 식히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고고장을 찾는 청춘남녀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눈빛을 교환했던 이성의 심장소리를 가장 가까이서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고고장에서 유일하게 몸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DJ와 전속 밴드

고고장에는 DJ와 전속 밴드가 공존했다. 전속 밴드가 많은 시간을 생음악으로 연주 한 후, 쉬는 시간에 DJ가 음악을 틀어주는 방식이었다. DJ 장민욱씨는 “사실 밴드가 연주할 때 스테이지에 사람이 더 많이 춤추러 나왔다”고 회상한다. 또한 밴드의 비주얼도 상당했다고 한다. 밴드만 보러 오는 여성이 많았다고 하니 그 당시 전속 밴드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고고 음악이 점차 설자리를 잃어가고, 디스코의 열풍이 불면서 고고장 대신 늘어간 ‘디스코 텍’에는 새로운 스타일의 DJ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바로 ‘액션 DJ’다. 이들은 기존의 정적이고 낭만적인 이미지의 DJ에서 박력 있고 화려한 무대 매너의 DJ로 탈바꿈했다. 우선 가죽재킷을 입거나 선글라스를 끼는 등 비주얼적으로 화려해졌다. 또한 댄서들과 함께 무대에서 춤을 추기도 하는 등 무도장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 고고장 계(契)를 아시나요

“얘들아 오늘 계 타는 날이다.”(고고장 가는 날이다)

당시에는 고고장에 가기 위해 계모임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사실 이 고고장 계모임은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구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들은 고고장에 소수의 인원으로 가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에 다수의 고고장 멤버를 확보하기 위해 계모임을 하기도 했다. 이 모임의 장점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비용절감의 효과를 누릴 수도 있었다. 다수의 인원이 돈을 모았기 때문에 조금 더 나은 서비스의 고고장을 선택해서 갈 수 있었다.

<도움말 장민욱 (現 추억더하기 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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