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이름궁합? 뭐하자는 겁니까

입력 2015-04-3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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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온라인뉴스부장

추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 5학년 시절, 동급생인 학교 야구부 주장을 짝사랑했다. 등번호 6번이 새겨진 야구복에 주황색 야구헬멧을 늘 쓰고 다니던 아이였다. 눈부시도록 흰 야구복에 까맣게 그을렸지만(늘 야구연습을 하느라) 잘생긴 얼굴. 열 한 살짜리 여자아이에게 요즘말로 ‘심쿵’이었다. 그 친구에게 대시(?) 한 번 못 해본 건 그는 닿을 수 없는 곳에 존재하는 킹카라서였다. 공부 잘하지, 잘 생겼지, 키 크지, 운동까지 잘해 늘 팬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뜬금없이 초딩 연애사가 떠오른 건 지난주 한 종편의 ‘이름궁합’ 보도 때문이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 이완구 국무총리의 검은돈 거래를 뒷받침하는 통화 사실을 보도하며 ‘이름궁합’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름궁합이란, 두 사람의 이름 획수를 계속 더해 최종 합산된 숫자로 궁합을 보는 애들 장난식의 점이다. 초딩이 짝사랑 상대의 이름과 자기 이름을 넣어 사귈 가능성이 있는지, 궁합률(?)은 어느 정도인지 남몰래 했던 것처럼.

이름궁합을 보도한 해당 종편은 “성완종·이완구의 이름궁합이 90%로 보통 사이가 아니다”라는 내용으로 이름 숫자를 더한 화면까지 내보냈다. 초딩용, 아니 요즘은 초딩도 안한다는 ‘이름궁합’이 메인뉴스 시간을 장식하자 인터넷 세상이 시끄러웠다. 한 마디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방송에서 내보낸 건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네티즌들은 인터넷상에서 보도화면을 퍼 나르며 “합성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이게 무슨 뉴스냐”에서부터 “뉴스 방송사에 남을 막장”, “분신사바도 하지, 왜”라는 댓글을 달았다.

하긴 종편의 할 말 없게 만드는 뉴스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선을 붙잡아 놓겠다는 식이다. 함량 미달 기사가 판치는가 하면 단독이나 긴급, 특종을 마구잡이식으로 붙여놓기 일쑤다. 작년 7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장남 유대균씨와 관련해 “뼈 없는 치킨 주문”이나 “3일 동안 만두만 먹어” 기사는 아직도 입길에 오르내린다. 좀 더 최근 버전을 들자면, “한국 방문 북한 선수대표단, 장어요리 잘 먹어”가 긴급으로, “성완종, 설렁탕·김치찌개 좋아해”가 특종으로 전파를 탔다. 시선 끌기식 황당뉴스는 오히려 더 진화하고 있다.

뉴스의 내용이나 스타일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기본 원칙이란 게 있다. 뉴스는 ‘가치’(value)를 지닌다는 점이다. 해당 언론사의 방침에 따라 가중치는 상당 부분 달라지긴 하지만 공동체에 대한 의무감을 토대로 한 뉴스의 원칙이 존재한다. 뉴스의 가치에 대해서는 영향성이나 시의성·저명성·근접성·신기성·갈등성을 들곤 하는데, 보통 이 중 하나 이상의 가치를 지닐 때 뉴스로 정의된다. 뉴스가 가치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언론사가 독자와 한 약속으로 사회적인 책임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즉 떠돌아다니는 얘기를 떠들겠다는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하고 ‘사실의 의미’를 전하겠다는 계약이다. 다소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이게 바로 언론이 갖는 저널리즘의 기본이다.

기본과 책임을 상실한 채 만신창이가 된 뉴스의 해악은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해당 언론사뿐 아니라 언론 전체와 독자, 그리고 공동체 모두에게다. 특히 인터넷 뉴스나 신문뉴스보다 방송뉴스의 경우 파급력이 큰 만큼 그늘도 깊을 수밖에 없다. 일부 뉴스에 실망한 이들은 모든 뉴스를 싸잡아 도매금으로 넘겨버린다. 무슨 일이 일어났다 하면 음모론이 등장하고 소문에 휩쓸리는 현실은 이런 현상에서 기인한다. 대중에게 ‘세상을 보는 창’이 이미 혼탁해졌음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매년 실시하는 미디어 신뢰도는 최근 4년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뉴스의 시대’에서 “뉴스는 곧 선생님”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좀 더 옮겨 보면 이렇다. “사람들은 제도권 교육 이후 더 커다란 영향력을 무한정 행사하는 뉴스라는 독립체의 감독 아래서 보낸다. 뉴스는 공적인 삶의 담론을 조성하고 우리 각자의 테두리 너머에 있는 공동체에 대한 인생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유일한 힘이다.”

조롱받는 선생님은 안 된다. 존경받는 선생님으로 바꿀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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