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기업을 하는가] 기업을 하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

입력 2015-05-0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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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 아산나눔재단 이사장

이투데이는 5월 1일부터 매주 금요일자에 ‘나는 왜 기업을 하는가’라는 시리즈 기고를 싣습니다. 기업경영 당사자들로부터 경영철학과 그동안의 경험, 애환을 직접 듣는 기획입니다. 첫날엔 정진홍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의 글을 통해 기업의 의미와 기업주가 갖춰야 할 자세 등을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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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기구하게 자기의 생존을 지탱한 드문 ‘문화’입니다. 아득한 때는 ‘사실’을 진술하는 이야기라고 했는데, 한동안은 역사가 사실이지 신화는 온통 ‘허구’라고 질타를 당했습니다. 이런저런 고비를 넘기면서 지금은 경험이 실증을 틀로 하여 여과되면 역사가 되고, 경험이 상상에 의해 여과되면 그것이 시가 된다고 하면서 신화란 ‘역사가 쓴 시(詩)’라고 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신화 이해의 자리에서 ‘먹고사는 것’을 주제로 한 신화들을 살펴보면 무척 흥미로운 사실들을 추출할 수 있습니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모든 신화들이 ‘먹이’란 ‘주검’이라고 진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먹이는 죽은 생명입니다. 그러니까 생명을 죽이지 않으면 우리는 먹이를 확보할 수 없습니다. 죽여야 삽니다. 살기 위한 몸짓은 살육의 몸짓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먹고살기 위한 생업은 그것이 어떤 일이든 나 아닌 너를 ‘죽이는 일’입니다. 그 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때 내 업은 성공하고 더 많은 잉여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먹는 일은 이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사람은 더불어 삽니다. 나 아닌 너도 나를 죽여 잡아먹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산다는 것은 잡혀 먹히지 않으려는 투쟁이기도 합니다. 생업은 그러한 몸짓이기도 합니다. 먹고산다는 것은 이렇습니다.

그런데 신화는 이 기막힌 처절한 역설에서 비롯하는 ‘다른 삶’을 이야기합니다. 서로 죽이는 삶의 현실이 도달할 종국은 총체적인 소멸일 수밖에 없는데 이를 넘어서는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입니다. 먹이가 주검이라는 사실은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죽여야 한다는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그를 위한 주검이 되어야 한다는 진실도 포함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먹이신화는 살기 위해서는 ‘죽여야 한다’는 것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것도 발언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여과하는 신화적 상상력의 깊이, 그리고 그것이 지닌 현실성을 새삼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런데 먹이신화는 어쩌면 위의 근원적인 이야기가 요청하는 내용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을 암시한다고 해도 좋을 또 다른 두드러진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먹이의 부패를 일컫는 이야기입니다. 거의 모든 신화는 필요 이상으로 쌓아놓은 먹이는 반드시 상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신화담론은 신화의 비현실성을 드러내는 전형일 수도 있습니다. 예비, 저축, 여유 등의 현실적인 효용을 우리는 ‘덕목’으로 기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그렇게 정당화되는 덕목들이 실은 ‘욕망의 소산(所産)’이기도 하다는 사실입니다. 잉여는 잉여의 재생산을 추구하지 필요의 충족을 지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먹이는 주검’이라는 신화의 맥락에서 보면 ‘남는 먹이’의 축적은 ‘혁혁한 살생’을 과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한 행위는 ‘죽여야 산다’만을 실천할 뿐 ‘죽어야 산다’는 것과는 무관합니다.

신화는 그러한 삶을 아예 ‘지탱할 수 없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남겨 저장한 먹이는 썩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현대문화의 부패방지 기술을 들어 이 신화의 부적절함을 지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식문화의 변혁을 초래한 ‘냉장고의 존재론’을 다시 기술해보는 것이 오히려 절실한 우리의 과제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식품의 보존’이기보다 ‘잉여의 독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홀로 먹는 행위’에 대한 염려입니다. 먹이를 혼자 먹는 것은 가장 딱한 삶으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삶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주장도 신화담론이 부적절함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먹는 일을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하는 것은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가능하다 해도 그것은 ‘잉여가 낳는 산업’ 쯤으로 여기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화는 ‘먹이를 먹는 일은 생존을 확인하는 감동을 더불어 공유하는 감사의 축제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뿐만 아니라 먹이를 먹기 전에 ‘고마움의 고백’이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 고마움의 대상은 ‘우주적’이라고 진술합니다. 먹는 행위는 자족적(自足的)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무릇 사람은 먹고살기 위해 제각기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생업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기업’도 다르지 않습니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기업은 다른 업과 달리 ‘돈을 버는 것’이 본디 일입니다. 그러므로 기업을 하면서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을 했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합니다. 따라서 노동의 대가로,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일을 한 대가로 돈을 벌어들입니다.

그러나 기업은 자기가 먹고살기 위한 먹이를 확보하려는 것 이상의 돈을 벌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잉여를 어떻게 ‘누려야’ 할 것인지 하는 데 대한 분명한 꿈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기업은 돈을 많이, 열심히, 벌어야 합니다.

그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먹고사는 일 자체가 그렇습니다. 기업도 예외가 아닙니다. 기업이 마치 물 흐르듯 졸졸거리며 마른 대지를 비옥한 들판으로 만들면서 끊임없이 흐르는 그런 것이기를 기대하는 일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기업가는 어떤 어려운 상황과도 마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돈을 벌어야 하는데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흔히 기업가 정신을 도전과 창조라고 말합니다.

도전해야 하는 현실, 창조해야 하는 현실을 짐작해보면 그런 태도가 요청되는 정황이란 두려울 만큼 암울한 정황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 뛰어드는 삶을 선택한 것이 기업가의 삶입니다. 그렇다면 ‘먹고살기 위한 업’이라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한 더 큰 차원의 꿈이 기업가에게 서려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계기에서 우리는 기업을 하는, 또는 기업을 하고자 하는 분들께 감히 드리고 싶은 부탁이 있습니다. 앞에서 서술한 먹이문화와 관련된 신화의 이야기를 마음에 담아주면 좋겠다는 기대가 그것입니다. 앞에서 진술한 내용을 역순으로 말하면 먹이는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먹이는 남겨 쌓아두면 반드시 썩는다는 사실, 그리고 먹이는 주검이어서 내가 살려면 남을 반드시 죽여야 하는데 그렇다고 하는 것은 남을 살리려면 내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도 포함한다는 이러한 것들인데 이를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희구입니다. 남이 죽으면 내가 살고 내가 죽으면 남이 삽니다. 그런데 산다는 것은 서로 살려야지 서로 죽일 수는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신화적 상상력을 역사적 현실을 넘어서는 출구로 여길 수 있다면, 그래서 ‘먹이는 주검’이라는 신화적 진실을 반추하면서 기업을 일군다면, 그래서 모든 기업가가 그렇게 살아간다면, 세상이 지금 여기와는 다르게 바뀔 것입니다. 구체적인 모습을 그릴 수는 없지만 틀림없이 더 나은 삶을 누리게 되리라는 것은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직보다도 돈을 버는 일에 삶을 던진 기업가들에게 이처럼 더 큰 기대를 갖는 것은 그 일이 어떤 일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을 빚기 때문입니다. 기업가의 자존심을 신뢰하고 싶습니다. ^

서울대 명예교수(종교학)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울산대 석좌교수

아산나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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