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호의 중구난방] 자국 유화업체 목 죄는 정부

입력 2015-05-0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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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호 산업부 차장

최근 정부의 무리한 세수 확보 정책에 국내 유화업계가 신음하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정부가 올해부터 플라스틱 등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가 되는 나프타에 적용하는 관세를 인상한 데서 시작됐다.

정부는 1996년부터 나프타 제조용 원유에 할당관세를 적용해 왔다. 할당 관세는 특정 품목의 가격 안정을 위해 기본 관세율 기준 40%포인트 범위에서 세율을 내려 한시적으로 적용하는 관세 제도다.

현재 원유 관세의 기본세율은 3%로, 수입하는 원유 중 나프타 생산에 사용하는 원유에 대해서는 할당 세율을 적용해 관세를 환급해주고 있다. 정부는 환급 대상이었던 나프타 생산 원유에 대한 환급 비율을 3%에서 1%로 조정했다. 다시 말해 무관세였던 국내 생산 나프타에 2% 관세를 부과한 셈이다.

일반 소비자에게는 생소하겠지만 원유를 정제해 얻는 나프타는 ‘석유화학 산업의 쌀’로 불린다. 나프타를 정제하면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 유분이 나오고 이를 다시 정제하면 플라스틱, 섬유, 의류, 세제, 화장품, 약품 등 수많은 화학제품의 원료가 나온다.

다양한 제품의 원재료가 되는 만큼 나프타에 대한 관세 부과는 그 어떤 제품보다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나프타에 관세가 부과되면 국산 석유화학 제품 가격이 인상되고 이 때문에 국내 수많은 제품의 원가를 상승시키는 요인이 된다. 또 이러한 연쇄적인 가격 인상은 국제시장에서 국내 수출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문제는 또 있다. 정부가 나프타 생산을 위해 원유를 수입하는 국내 기업에는 관세를 부과하는 반면, 해외에서 직접 수입하는 나프타에는 여전히 무관세를 유지하기로 한 것. 한 마디로 우리 정부가 부과하는 관세가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 나프타 생산 기업을 보호하게 되는 셈이다. 경쟁력이 약하다고 판단되는 수입 제품에 관세를 부과해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올리는 것과는 정반대의 행보다.

현재 중국과 중동, 미국 등은 국제시장에 값싼 화학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유화업계에 따르면 중국에서 자급률이 90%를 넘어선 석유화학 제품은 2010년 2개에서 올해 9개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 산유국인 중동은 원유 정제설비를 증설하는가 하면 원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석유화학 제품 생산에도 나서고 있다. 미국 역시 셰일가스 붐에 힘입어 저유가의 덕을 보고 있다.

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나프타 제조용 원유에 할당관세 1%를 부과하면 유화업계는 연간 1400억원의 세수 부담을 추가로 지게 된다고 한다. 이와 함께 정유 등 전방 산업의 영업이익은 1207억원 감소하고 적자기업이 8% 증가하는 등 경영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또 나프타 할당관세가 폐지되면 전 산업의 물가가 평균 0.028% 오르고, 특히 화학제품 물가는 0.3% 상승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원유에 관세를 부과하는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미국(0.1~0.2%), 호주(0.4%), 멕시코(10%) 등 4곳뿐이다. 다만 비산유국 중에서는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관세를 적용한다. 자원 빈국임에도 유일하게 관세를 부과한다는 얘기다.

단기적인 세수 확보를 위해 장기적으로 산업 전반에 나타날 악영향을 간과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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