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晉)의 초대 황제인 무제(武帝) 사마염(사마의의 손자)이 이밀(李密)을 태자세마(太子洗馬)로 임명했을 때의 일이다. 이밀은 진정표(陳情表)를 올려 벼슬할 수 없는 사정을 간곡하게 아뢰었다. 그는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4세 때 어머니도 개가해 할머니 손에 자랐다. 당시 할머니는 병석에 누워 있었다.
진정표는 이런 내용이다. “신(臣) 밀은 올해 44세이고 할머니는 96세이니 신이 폐하께 절의를 다할 날은 길고, 할머니를 봉양할 날은 짧습니다. 까마귀가 먹이를 물어다 늙은 어미에게 먹여 은혜를 갚듯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봉양하게 해주시기를 바라옵니다.[烏鳥私情 願乞終養] (중략) 할머니가 여생을 끝까지 보존하게 된다면 신은 살아서는 마땅히 목숨을 바쳐 폐하를 섬기고, 죽어서도 결초보은할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오조사정(烏鳥私情)이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는 마음이다. 까마귀는 자라서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여 은혜를 갚는다. 그래서 효금(孝禽), 효성스러운 날짐승이라고 부른다. 반포지효(反哺之孝) 반포보덕(反哺報德) 자오반포(慈烏反哺) 다 같은 뜻이다.
효자로 유명했던 연암 박지원도 밥을 먹다가 까마귀 두 마리를 보고는 “너희들 반포하러 왔느냐?”며 고기 몇 점을 섬돌 아래에 던져주었다. 그리고는 한 마리가 고기를 물고 가 반포하는 것을 슬픈 표정으로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의 아들 박종채가 쓴 ‘과정록’(過庭錄)에 나온다.
무제는 진정표를 읽고 이밀의 청을 들어준 것은 물론 할머니를 잘 봉양하도록 노비와 식량까지 하사했다. 진정표는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와 함께 명문으로 꼽힌다. 출사표를 읽고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는 충신이 아니며 진정표를 읽고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는 효자가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반포지효는 우리말로 안갚음이라고 한다. fused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