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기업을 하는가 1] 윤석철 ㈜수아 회장-기업도 어우러져 사는 자연계의 하나

입력 2015-05-08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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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 어떤 자리에 어울려 일행과 노래방에라도 같이 가면 절대로 ‘오빠생각’이라는 노래를 부르지 못합니다. “뜸북, 뜸북~~, 귀뚤, 귀뚤~~” 잘 부르다가도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실 때, 비단 구두 사 가지고 오신다더니~” 대목에 이르면 어김없이 목이 메고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기 때문입니다. 시골에 살고 있는 여동생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말 타고 서울 갔다”는 말은 “모든 것 뒤로하고 떠나갔다”고 들립니다. 기다리고 있는 그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데,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나 생각해 봅니다.

사업. 뒤돌아 생각하면 그야말로 떠밀려온 삶이 싫어 시작했습니다. 1979년 10월 17일, 10·26사태가 일어나기 아흐레 전 겁도 없이 덜컥 시작했습니다. 만 스물아홉 젊은 나이에 회사에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위 직책에 있었습니다. 누구나 꿈꾸던 해외 연수 발령 직전, 회사에 사표를 냈습니다. 해외 연수를 다녀오면 10여 년은 그 회사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직원을 하인처럼, 머슴처럼 생각하는 회사 풍토에서 일등 하인이 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회의가 머릿속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딱히 손에 잡히는 사업이 있어서가 아니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집념도 없었습니다. 그저 회사에서 제 뜻에 상관없이 떠밀려 사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런 저를 이해하고, 무슨 일이든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 찾아 하라고 격려해주던 아내가 지금도 고맙습니다.

기업을 운영하고 사업을 한다는 것이 돈 버는 면허증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사업이니 당연히 돈 버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어야 할 텐데 물물교환 시대를 사는 사람처럼 필요한 것을 찾아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필요가 크냐 작으냐가 문제였지 제가 벌어들일 돈, 제 몫이 많으냐 적으냐는 기준이 되지 않았습니다. 차를 운전하듯, 어디로 가느냐는 운전자가 설정할 목표입니다.

20여 년 전 어느날, 우리 회사에서 영업부장으로 일하고 있던 막내동생이 싱글벙글하며 맥주 두 상자를 들고 돌아왔습니다. 유럽 출장에 동행한 동생과 독일에 며칠 묵을 때입니다. 체코 필젠에 있는 거래처를 방문한다더니 그 지역에서 나오는 유명한 필젠(Pilzen) 맥주의 한국 독점 판매권을 받고 맛보라고 맥주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사업을 거절했습니다. 그런 사업을 하시는 분들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거나, 그런 사업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다만 그것은 제가 하려는 사업이 아니었고, 돈이 된다고 어떤 일에나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며칠 전, 밤늦은 시간에 아들에게 말해두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장례식 대신에 내가 미리 정해놓은 음악이나 틀라”고 했습니다. 모차르트의 교향곡 31번(파리 교향곡), 로드 스튜어드(Rod Steward)의 세일링(Sailing), 찬송가 82장, 그리고 쇼팽 피아노곡 2번(Funeral March). 모차르트의 ‘파리 교향곡’은 제게 가장 암담했던 시절, 기약도 없이 유럽으로 떠나던 비행기 속에서 왠지 모르게 듣고 또 들은 이후 지금까지 가까이 하는 음악입니다. 세일링(Sailing) 역시 그 무렵 듣던 음악이었습니다.

특히 쇼팽의 피아노곡은 꼭 제가 좋아하는 마르타 아르헤리치(Martha Argerich)의 연주여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그녀의 연주로 듣는 그 곡은 마치 쇼팽이 제 삶의 궤적을 꿰뚫어보고 저를 위해 만든 곡 같습니다. 가족들과 모든 것을 뒤로하고 그 곡 들으면서 문지방 넘어 떠나는 제 모습을 상상하곤 했습니다. 웬 청승이냐고 하겠지만 삶은 참으로 힘들었고 더욱이 우리나라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루 하루는 전장이었습니다. 하루 하루는 정답이 없는 시험을 치르는 일이었습니다. 하루 하루가 무너져가는 자존심을 다시 힘겹게 일으켜 세우고 스스로를 위로할 말을 어렵게 찾아내야 하는 날들이었습니다. 묘하게도 늘 새로운 기술들에 마음이 끌렸고 그것들을 붙잡고 몇 년씩 뛰어도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 일들이 여러번 반복됐지요.

견디다 못해 그런 일을 포기하면 5년이나 10년쯤 지난 다음에 그 기술이 정말 필요한 때가 오는 것을 보면서 “너무 빠르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라 꾸짖음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너무 빠른 것도, 너무 늦은 것과 마찬가지로 잘못이었습니다. 때가 될 때까지 버텨줄 자원도 없었습니다. 실수가 너무 컸고 출혈도 너무 컸습니다.

영장류 동물 중 보노보(Bonobo)에 마음이 많이 갑니다. 보노보 무리 중 하나가 먹을 것을 손에 넣었을 때 그 녀석의 지위가 아무리 낮다 하더라도 우두머리나 힘있는 수컷들이 빼앗아 먹지 않습니다. 손을 내밀어 좀 나눠달라고 청하여 얻어 먹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빼앗아 먹고, 훔쳐 먹고 입에 들어가던 것까지 꺼내 먹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기업의 문화는 참으로 냉정하고 사업은 잔혹합니다.

한번은 국내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대기업을 방문하여 임원들, 부장·차장급 직원 등 10명이 넘는 상대와 협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 회사측 참석자들을 압박하면서 일방적으로 그들의 조건을 받으라고 강요했습니다.

“대기업 주위에서 얼쩡거리는 것은 두 가지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상대가 나를 잡아먹을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바보 멍청이일 경우입니다. 다른 하나는 ‘나를 잡아먹어만 봐라, 어디 당신이 견디나 보자’ 하고 독을 품고 있는 경우일 것입니다. 잡아먹는다고 소문이 난 상대에게 어느 누가 진정한 협력자가 되겠으며, 또한 독을 품은 상대와 어떻게 협력이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회사가 어떤 상대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을 가지기 위해 엄청난 돈을 새로 투자하겠습니까? 아니면 힘겹게 저희를 잡아먹으시겠습니까? 서로 존중하는 상생의 협력이 더 경제적이며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천천히, 또박또박 얘기를 이어나가자 그들은 일방적 압박의 분위기를 풀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가 제안한 상생의 협력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저도 더 이상 그 분야에서는 그들과 협력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늘 입버릇처럼 “모든 사람은 아기로 태어난다”는 말을 합니다. 사람이 그러하듯 기업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돌봄을 받으면서 태어나고, 한 걸음 한 걸음 내 발로 성장하는 기본을 거치지 않고, 대뜸 어른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을 자기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지요. 2세, 3세의 손에서 창업정신은 어느새 물려받은 것을 얼마큼 키웠느니, 불렸느니 숫자로 바뀌어집니다.

‘기업은 추상명사입니다. 마치 ‘가족’이라는 추상명사가 부부, 자식, 형제자매라는 관계를 통해 구체화되듯이 기업도 그 소속 구성원, 다른 경제주체와의 관계를 통하여 구체화됩니다. 관계는 상호작용입니다. 그냥 저만치 홀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고 감정을 공유하면서 아픔과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손 내미는 관계가 되어야 비로소 서로 존재가 됩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사업을 한다는 것이 사람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독점은 관계를 단절시키고 존재를 소외시키는 일입니다. 지속 가능한 사회가 되려면 관계가 유기체처럼 상호 의존적이어야 합니다.

36년째 사업을 하고 있고, 은퇴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아직 배우고 깨달아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큰 나무 작은 나무, 나무와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이름 모를 새들, 땅 속 한없이 작은 생명세계가 어우러져 또 하나의 우주인 숲이 되듯이, 기업의 세계도 자연의 이치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

윤석철(尹錫鐵)

1950년 충남 공주 출생

서울 보성고, 고려대 정외과 졸

1979. 10~2013. 8 ㈜ 수아 대표이사

2013. 8~현재 ㈜수아 회장

2005. 3~2006. 10 한국일보 및 인터넷한국일보 객원기자

1991~2005 학교법인 인덕학원 감사

㈜ 수아

1. 탄약 개발 및 설계·수명 관리기술 개발

2. 해양 추진체계 개발 및 제작

3. 화약류를 이용한 비상 장치 개발

4. 친환경 소화장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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