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전날까지만 해도 사전 여론조사에서는 보수당과 야당인 노동당의 지지율이 거의 비슷해 초박빙이 예상됐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오히려 2010년 총선 때보다 의석 수는 더 늘었다.
이번 영국 총선이 예상을 깨고 여당의 압승으로 끝난 것은 국민들이 끝까지 투표 대상을 정하지 않은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다. 사전 여론조사에서는 노동당과 보수당의 지지율이 모두 30%대였다. 그러나 국민 대부분이 선거 당일까지 투표 정당을 결정하지 못해 나온 결과였다.
또한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 관심을 끌 만한 쟁점이 적었던 것도 의외의 결과를 초래했다. 선거전에서 보수당은 그동안 추진해온 경제 정책의 성과를 강조한 반면 노동당은 양극화 수정을 내세웠다. 여야 당수 토론에서도 양 진영은 끝까지 각자의 논리를 내세움으로써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평가다.
결국 이번 선거는 캐머런 정권이 지난 5년에 걸쳐 추진해온 경제 정책에 대한 평가라 할 수 있다.
지난 2010년 13년간 장기 집권해온 노동당과 정권 교체를 달성한 캐머런 정권은 국가 재정이 최악인 시기에 출범했다. 캐머런 정권이 출범하기 2년 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영국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 미국 뉴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제 금융 허브로서 세계의 자금을 빨아들였던 런던의 금융기관들이 잇따라 국유화되는 등 전례없는 위기에 빠졌다.
2009년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07년 2.6%(전년 대비)에서 마이너스(-)4.3%로 2차대전 이후 최악의 수준을 기록했다. 금융 위기 이전에 5%대였던 실업률도 2009년 7월에는 7.9%로 상승했다.
당시 고든 브라운 정부는 경기 부양책을 최우선 과제로 정하고, 긴급 재정 지출을 단행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재정난만 초래했다. 2009년 재정수지는 GDP 대비, 전후 최대인 -11.2%를 기록, 이것이 결과적으로 선거에서 패배하는 원인이 됐다.
13년 만에 노동당에서 정권을 탈환한 캐머런은 보수당 정권 출범 이후 재정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다. 당시 그리스발 유로존 재정 위기로 상황은 녹록지 않았지만 긴축 재정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경기 회복을 서둘렀다.
그 중심에 있던 것이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이다. 그는 경기 부양과 세출 삭감을 병행, 재정 재건과 경기 부양의 두 마리 토끼를 교묘하게 좇는 정책을 추진했다. 경제 대책으로는 정책 효과가 큰 주택시장에 주목했다. 모기지에 정부가 보증을 서는 식으로 주택 거래를 활성화했다. 또한 법인세율을 EU 최저 수준인 20%까지 낮춰 해외 기업을 적극 유치했다. 한편, 지방 재정의 세출 삭감을 철저히 하는 한편 은행세 등 새로운 증세 방안을 도입해 재정 회복을 착실히 진행했다.
중앙은행인 영란은행도 2009년 3월 양적완화 조치를 시작, 시중에 자금을 대량으로 공급해 경기를 뒷받침했다.
결국 영국 경제는 빠르게 회복돼 2009년 마이너스였던 GDP 성장률은 2010년에는 1.9%로 회복했다. 런던 금융가에도 숨통이 트이며 중동과 러시아, 중국과 인도 등 해외 투자가 급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영국의 GDP 성장률을 2.7%로 전망했다.
그러나 캐머런 총리의 성과 이면에는 그늘도 생겼다. 그 한 가지가 이민 문제다. 지난 몇 년간 일자리를 찾아 이민자들이 유럽 전역에서 쇄도하고 있다. 영국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2013년 10월부터 2014년 9월까지 1년간 영국으로 유입된 이민자 수는 29만8000명으로 2005년의 32만명에 이어 최대를 기록했다. 이들은 200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간 약 200억 파운드의 재정 수입에 기여했다.
그런 경제적 기여에도 불구하고 이민자들은 영국 국민에게 감정적인 반발을 사고 있다.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캐머런 총리는 EU 잔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2017년에 실시할 것이라는 공약을 내걸었다. 영국의 EU 탈퇴가 현실화할 경우 한국-EU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영국이 빠져 영국과 별도의 FTA가 추진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영국의 EU 탈퇴는 영국의 무역 상대국에도 골치 아픈 문제라는 의미다.
이번 총선은 과거의 실적에 대한 성적표인 만큼 캐머런 총리가 진정한 평가를 받기 위해선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