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평창으로 회귀하자

입력 2015-05-12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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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한국외대 국제스포츠레저학부 교수

지난 몇 차례의 칼럼을 통해 동계올림픽이 평창 및 강원도민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고민해보았다. 그리고 올림픽은 반드시 평창과 강원도 주민들로부터, 그들의 관점에서부터 기획 및 준비되고, 시작되며 끝마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와 조직위의 불통과 분산 개최론자들의 평창주민들을 배제한 분산개최 논의는 마치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위험해 보인다. 주객이 전도되었기 때문이다. 수십년간 소외받아온 강원도와 평창 주민들의 마음을 대변하기보다는 치적 쌓기와 전시행정, 경제성 추구만이 전부인 지금의 모습은 따뜻한 공감이 없는 오만한 외부의 훈계와 같다. 따라서 ‘평창주민들이 주인이다’라는 주장은 올림픽을 준비하는 정부와 조직위, 그리고 분산 개최론자들에게는 그저 무가치한 소수의 의견에 불과할 것이다.

지난 칼럼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콜로라도는 20년 가까운 노력 끝에 유치한 1976년 동계올림픽의 유치 자격을 1972년에 스스로 포기하였다. 올림픽 비용을 위해 필요한 증세와 환경 파괴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콜로라도 주정부는 이에 대해 주민투표를 실시하였고, 59%의 주민들이 올림픽 개최에 반대하여 결국 대회 반납을 결정했다.

2002년 9월 22일, 2010년 동계올림픽의 유력한 후보 도시였던 스위스의 베른 역시 주민투표로 스스로 후보 도시의 자격을 포기하였다. 올림픽 개최에 필요한 과도한 예산 낭비가 주요 이유였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 스위스와는 반대로 캐나다와 밴쿠버시 주요 관계자는 올림픽 유치 경쟁에 참가하기로 결정한다. 2003년 2월 23일에 실시한 지역투표에서 64%의 밴쿠버시 지역주민들이 개최에 지지를 표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밴쿠버는 올림픽 최종 유치 경쟁에 참가했고, 결국 평창을 이기고 2010년 올림픽의 개최도시가 됐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밴쿠버는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한 차례 투표를 더 실시한다. IOC가 요구한 2300만 달러의 유산기금(Legacy Fund)을 충당하기 위한 증세 여부를 결정짓는 투표였다. 밴쿠버 주민들은 증세에 찬성했고, 올림픽은 차질 없이 준비될 수 있었다. 비록 스위스와 캐나다 양국의 결정은 달랐지만, 지역주민들의 의사가 곧 양국의 결정이라는 ‘결정의 근거’는 동일했던 것이다.

물론 칼럼을 읽고 있는 일부 독자는 스위스와 캐나다의 사례가 너무 오래전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2022년 동계올림픽에 후보 도시로 참가했던 폴란드의 크라코우, 독일의 뮌헨, 스위스의 생모리스와 다보스, 그리고 마지막까지 강력한 후보 도시 중 하나였던 노르웨이 오슬로는 후보 도시에서 모두 자진사퇴했다. 물론 그 이유는 해당 후보 도시 지역주민들의 반대였다.

핵심은 매우 간략하지만 강력하다. 해당 지역주민들이 한결같이 의사 결정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이고, 이를 투표로 수렴한 민주적 의사 결정이 항상 존재했다는 것이다.

혹자는 언론에 비치는 평창 주민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집단 이기주의를 비판한다. ‘개폐회식장 강릉이전 절대불가, 올림픽 반납불사’와 같은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모습에 대한 비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들이 나빴다고, 그들의 잘못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자격이 있을까? 그들은 애당초 의사 결정의 중심에 있었던 적도, 민주적 의사 결정을 경험한 적도 없다. 늘 통보의 대상이자, 정치적 치적 쌓기의 희생양이었고, 양자택일의 외통수에 걸려 악수를 둘 수밖에 없었던 약자였다.

올림픽 시설물의 건축 상황을 둘러보기 위해 지난주 평창 가리왕산 일대와 강릉을 방문하였다. 그곳에서는 이미 참혹하게 잘려나간 수만 그루 나무의 아픔과 카메라를 막아서는 거친 손길만이 올림픽의 전부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지금이라도 올림픽을 반납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도 용기 있는 행동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주장할 용기도 결단도 있지 않다면, 우리는 ‘평창주민들이 주인이다’라는 올림픽의 새로운 어젠다로 회귀해야 한다. 왜냐하면 평창올림픽 이후 무엇이 남든 남겨진 것을 짊어지고 갈 당사자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를 실행하기에 충분한 3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다.

글 / 박성희 교수(한국외대 국제스포츠레저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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