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산에 꽃이 지누나 봄이 가누나/해마다 저 산에 꽃 피고 지는 일/저 산 일인 줄만 알았더니/그대 보내고 돌아서며/내 일인 줄도 인자는 알겠네.’ 김용택의 시 ‘일’이다. 봄을 보내는 것은 계절과의 작별이면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다.
당 시인 왕유(王維·699~761)는 ‘송춘사’(送春詞)에서 이렇게 읊었다. “날마다 사람은 하릴없이 늙어가건만/봄은 해마다 다시 돌아오네/술통에 술 있으니 서로 즐기세/꽃 날린다고 애석해해 봐야 별 수 없다네.”[日日人空老 年年春更歸 相歡有尊酒 不用惜花飛]
고려 문신 이규보(李奎報·1168~1941)의 ‘도중에 눈을 만나 안화사까지 걸어가 당사에게 올리다’[路中遇雪 行至安和寺呈幢師] 3수 중 마지막 수는 이렇다. “봄을 한 번 보내고 만회할 길 없어/지금도 쓸쓸히 바라보며 남은 슬픔 안고 있는데/하늘이 은근한 나의 뜻을 애석히 여겨/꽃철 아닌 이때 일부러 눈꽃을 내려주시네.”[一送春歸未挽廻 至今悵望抱餘哀 天公惜我殷勤意 故遣狂花律外開]
조선 후기의 문신 권상하(權尙夏·1641~1721)의 ‘사월 초하룻날 황려(黃驪)로 가는 계문을 보내며’[四月初吉 送季文之黃驪]도 읽어 보자. “오늘은 그대를 보내고/어제는 겨우 봄을 보냈네/봄을 보낸 것도 애석하거늘/어찌 차마 또다시 사람을 보낼꼬.”[今日送君去 昨日纔送春 送春尙可惜 那堪復送人] 황려는 여주의 옛 이름이다. 봄을 보낸 날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4월 초길(初吉)은 여름의 시작인 맹하의 첫날이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오늘은 음력 3월 25일. 봄은 오늘까지 닷새가 남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