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통신은 14일(현지시간) 비비 킹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본명이 라일리 B. 킹인 그는 변방에 머물던 블루스 음악을 주류로 끌어올린 기타리스트 겸 가수다.
1925년 미시시피 주의 가난한 목화 농가에서 태어난 킹은 교회 성가대원으로 활동하고, 전도사였던 삼촌으로부터 기타를 배우면서 처음 음악과 인연을 맺었다.
목화 농장에서 받는 일주일치 급료를 하룻밤의 거리 공연에서 벌 만큼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보인 킹은 1947년 테네시주 멤피스로 무작정 떠나 친척이자 유명 블루스 뮤지션인 부카 화이트로부터 본격적인 블루스 수업을 받게 된다.
멤피스 지역 라디오 방송에서 디스크자키로 활동하며 '빌 스트리트 블루스 보이' 또는 '블루스 보이'라는 애칭을 얻게 된 킹은 '블루스 보이'의 머리글자를 딴 'B.B. 킹'이라는 이름으로 1949년 첫 번째 싱글 '미스 마사 킹'을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루실'이라는 이름을 붙인 깁슨사의 기타를 애용하며 '스리 어클락 블루스'(1952년), '유 업셋 미 베이비'(1954년), '스위트 식스틴'(1960년), '더 스릴 이즈 곤'(1969년) 등의 명곡을 탄생시켰다.
대표곡은 '더 스릴 이즈 곤'으로 1970년 첫 번째 그래미상을 따낸 킹은 30차례 그래미상 추천 명단에 올라 15번이나 받았다. 그 중 두 차례는 2000년대에 수상했을 정도로 60년 이상 왕성한 음악활동을 펼쳤다. 그래미 평생공로상, 음악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폴라 음악상', 대통령 훈장을 수상하고 '블루스 명예의 전당'과 '록 앤드 롤 명예의 전당'에 모두 헌액되며 블루스의 전설로 자리매김했다.
비브라토 주법으로 유명한 그의 기타 연주와 노래는 에릭 클랩튼, 스티비 레이 본, 셰릴 크로, 존 메이어 등의 후배 뮤지션들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킹은 클랩튼이나 록그룹 U2와 함께 앨범 작업을 하는 등 자신의 블루스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음악흐름을 받아들이려는 노력도 해왔다.
또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1년에 100회 이상의 공연을 할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했으나 당뇨 증세가 심해지면서 지난해 10월 시카고 공연과 나머지 일정을 취소하며 건강에 적신호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