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원전 283년 조나라에 ‘화씨벽(和氏璧·화씨의 구슬)’이라는 진귀한 벽옥(璧玉)이 있다는 사실을 안 진나라 소양왕은 혜문왕에게 “진나라의 성 15개와 조나라의 화씨벽을 맞바꾸자”고 제안했다. 혜문왕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화씨벽을 넘겨주었다가 진나라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성도 못 얻고 화씨벽만 잃게 될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진나라의 요구를 거절하면 그것을 구실로 조나라로 쳐들어올 것이 뻔했다.
그래서 그는 인상여를 사신으로 보내 협상하게 한다. 인상여는 진나라로 넘어가 화씨벽을 소양왕에게 공손히 바쳤다. 하지만 소양왕은 성을 주겠다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인상여는 “그 구슬은 훌륭한 보옥이지만 잘 보이지 않는 흠이 하나 있다”고 소양왕을 속이게 된다. 소양왕이 화씨벽을 다시 인상여에게 넘겨주자, 인상여는 “만약 강제로 화씨벽을 빼앗으려고 한다면 제 머리와 이 화씨벽을 기둥에 던져 박살내겠다”고 협박하게 된다. 소양왕은 화씨벽이 손상될까봐 물러서게 되고, 결국 인상여는 침착히 대응해 무사히 조나라로 돌아갔고 화씨벽도 지켜냈다.
하지만 세상에는 완벽이란 것은 없다. 인간은 태생적인 배경부터 불완전한 존재다. 세계적인 법철학자 마사 너스바움 시카고대 로스쿨 석좌교수는 모든 인간을 유한성과 연약함을 지닌 존재라고 전제한 뒤 “사회 속에선 적어도 그 같은 불완전함에 대한 인식을 간과하거나 애써 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불완전의 조건에서 시작된 제도 역시 100% 완벽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역사적으로 제도에 대해서만큼은 완벽에 가까운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제도지만 운영하는 자가 제대로 적용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뻔하다. 최근 끝난 미래창조과학부의 홈쇼핑 재승인 심사가 개운치 않은 이유다.
미래부는 이번에 2개의 심사 항목에 대해 처음으로 과락제를 도입하며, 홈쇼핑의 공적책임성과 경영계획 적정성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잘 짜여진 각본처럼 대상기업이 한 곳도 없었다. 지난해 갑질 논란의 중심에 섰던 롯데홈쇼핑의 경우에도 가까스로 통과했다.
물론 처음부터 탈락을 미리 정하고 심사를 한다는 것 자체도 말이 안된다. 아쉬운 점은 완벽한 심사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래부의 홈쇼핑 재승인 심사 뒤 불거지고 있는 소문도 같은 시각에서 비롯된 듯하다. ‘홈쇼핑 재승인 심사위원회’에 참여했던 심사위원 가운데 일부가 정치권에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제보했다는 소문이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미래부에 홈쇼핑 재승인 심사 결과와 관련한 자료를 요청한 상태다. 감사원도 이번 홈쇼핑 재승인 심사 결과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 같은 잡음이 불거진 것 자체가 재승인 심사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미래부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평가한 것이 아니라며 책임 회피를 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과락제를 도입하고 심사위원회를 구성한 미래부의 책임이 없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완벽한 심사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의 심사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는 아닌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