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사장이 혁신적인 시도로 증권업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한화투자증권에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겠다는 주 사장은 ‘고객 중심 영업’과 ‘주주 가치 증대를 위한 책임 경영’으로 요약되는 혁신안을 들고나와 증권업계의 관행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쓴소리를 마다 않고 있다.
주 사장의 이번 시도가 일어탁수(一魚濁水, 한 마리의 물고기가 온 물을 흐림)로 그칠지, 아니면 태산북두(泰山北斗,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로 우뚝 서는 계기가 될지 증권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반성’에서 출발한 변화=2013년 8월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로 취임한 주 사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인력 감축이다. ‘구조조정의 달인’, ‘칼잡이’로 불려 왔던 주 사장이 대표로 부임한다는 이야기가 나돌 때 이미 예상됐던 일이다.
주 사장은 지난 2013년 11월 경영현황보고를 통해 연간 300억~500억원의 적자 발생이 예상되자 인력 구조조정 방안을 검토했다. 지난해 1월 한화투자증권은 당시 300여 명 규모의 희망퇴직을 시행하고 인력 구조조정을 마무리했다.
한화투자증권은 인력 감축 이후 다른 증권사의 전철을 밟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주 사장은 생각하지도 못한 고객을 향한 반성문을 썼다. 증권업의 전반적 침체 속에서 고객 신뢰 회복을 통해 생존을 모색하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반성문의 요지는 증권사가 고객보다 회사와 직원의 이익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결국 고객의 신뢰를 잃고 증권업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 현재 직원들의 성과 위주의 영업 방식을 탈피해 모든 중심을 고객에게 두겠다는 다짐이다.
주 사장은 ‘새로운 변화에 대한 대표이사 편지’라는 글을 통해 증권사의 수수료 중심의 영업 형태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증권사는 고객에게 가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보다는 수수료를 더 받기 위해 잦은 주식 매매를 유도하곤 했다”며 “심하게 말해 수수료만을 위한 장사를 했다고 비난을 받아도 떳떳하게 변명하기가 궁색할 정도였다”고 질타했다.
주 사장은 이러한 증권사의 행태가 고객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증권업의 위기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주 사장은 “고객을 위한 영업이 아니라 회사나 영업직원을 위한 영업행태를 당연한 것처럼 해왔다”며 “증권업 위기의 근본 원인은 증권사에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주 사장은 회사의 영업방식을 과감하게 고객 관점으로 개편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과다한 주식 매매에 대한 실적 불인정 △매매수수료 기준으로 지급하던 개인 성과급 폐지 △리서치 센터의 운영 개편 △잘 아는 상품만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주 사장은 반성문 이후 지난해 8월 내부 기밀로만 여겨지던 ‘주식 회전율과 수익률의 연관성’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작년 한화투자증권의 주식 거래 고객 정보를 분석한 결과 과다한 주식 매매로 투자자의 수익률이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내용의 보고서는 다른 증권사들을 기함하게 하기도 했다.
주 사장은 “전담 관리자가 있는 고객의 수익률이 더 나쁜 것은 내부적으로도 충격적이었다”며 “이것을 외부에 공개할 것인가를 갖고 경영진이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우리가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 우리의 치부를 우리 손으로 직접 공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임직원부터 고객까지 목표는 ‘고객보호’=한화투자증권은 고객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바람직한 투자 방향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한화투자증권은 고객에게 직접 맞닿아 있는 직원들의 변화부터 이끌기로 했다.
한화투자증권은 직원들은 판매 수익에 영향을 받지 않고 고객에게 가장 적합한 상품을 추천할 수 있도록 직원 보상 제도를 개편했다. 금융상품 판매 시 개별 금융상품의 보수율이 아닌 상품군별 대표 보수율을 기준으로 직원들의 수익을 인정해 고객에게 적합한 상품보다는 높은 보수율이 적용되는 상품을 추천할 가능성을 차단해 버린 것이다.
또한 고객 주식 회전율이 연간 200%를 넘는 경우 거래에서 발생한 수익을 과당 매매 수익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해 직원과 지점의 수익을 인정하지 않도록 했다. 고객의 이익에 반하는 과도한 주식 매매를 유도하여 수수료를 발생시키는 행위를 방지한다는 취지이다.
한화투자증권은 증권업계가 ‘종목을 사라’고 권유하지만 ‘팔아야 한다’고 과감히 지적하지 못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상장사부터 해당 종목 보유 고객, 리포트 작성 연구원 모두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객 보호를 위해서는 매도 권유가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회사는 중립과 매도 이하 투자의견이 담긴 보고서의 비중을 40%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추후 이에 부담을 느낀 인력 이탈이 일어나자 한화투자증권은 투자의견 중 보유 등급의 기준범위를 축소해 고객에게 보다 명확한 투자의견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새로운 기준을 적용하면 보유 비중은 28% 수준으로 낮아지는 반면 매수 혹은 매도 투자의견의 비중이 종전보다 높아진다.
또한 한화투자증권은 기관 투자자들에게만 제공됐던 ‘고위험등급 주식’을 개인 고객들에게도 공개했다. 자본 건전성이 좋지 않아 자본잠식이 진행 중인 기업이나 부채비율이 높아 이자비용이 영업이익을 초과하는 업체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다만 작년 9월부터 제공된 이 서비스는 중단되는 대신 ‘주식 투자등급 서비스’가 개시된다.
한화투자증권은 고객의 편의 증대를 위해 고객지원센터(콜센터)를 개편해 상담시간을 밤 10시까지로 확대하고 전문PB의 상담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한화투자증권은 고객 보호를 회사의 책임으로만 남겨두지 않았다. 고객들에게도 자산을 스스로 보호하게 하도록 주식 매매 수수료 체계를 변경했다. 주식 매매 수수료 체계는 정액 기본 수수료를 도입하고 정률 수수료를 낮춰 주문금액이 낮을수록 수수료 부담이 증가하는 반면 주문금액이 높을 시 수수료 부담이 줄어들도록 조정된다. 단기적으로 매매를 자주 하는 것 대신 장기투자를 이끌 수 있는 방안이다.
◇자사주 매입 통한 ‘책임경영’ 강화=주 사장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책임 경영도 강조했다.
주 사장이 책임 경영을 위해 지난해 3월 꺼내 든 카드는 전 임원 자사주 매입이다. ‘임원 주식보유제도’는 임원들이 개인별 직전 3개년 총 보상의 연 환산 금액을 일정 비율에 따라 주식으로 매입해 퇴임 시까지 보유하는 제도다. 올해부터는 임원뿐만 아니라 부서장급으로 적용 범위가 확대된다.
한화투자증권은 이 제도의 도입으로 중장기적인 책임경영과 주인의식 강화를 통해 회사와 임원이 성장 비전을 공유하고 주주와 임직원의 이해를 일치시킨다는 방침이다.
또 주 사장은 직원들에게 업무 성과를 높이기 위한 동기를 부여하는 차원에서 ‘직원 연금’ 제도의 도입을 검토 중이다. 이 제도는 직원의 급여 가운데 일정 부분을 적립해 펀드를 조성해 자사주에 투자, 운용한 뒤 퇴직 후 연금 방식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직원들의 노후 보장과 회사의 성장은 물론 고객 보호까지 연동한다는 차원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주 사장은 임직원의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한편 주주들과의 소통에도 힘쓰고 있다. 올해 3월 정기 주주총회는 토크쇼 방식의 ‘열린 주총’을 개최하고 전자투표제를 도입해 주주들의 의견을 경영에 적극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이 같은 고객 보호 중심 영업과 책임 경영 강화에 힘입어 한화투자증권은 올해 1분기 지난 2011년 2분기 이후 최대 분기 순이익을 기록했다. 1분기 영업이익이 24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43%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2672억원으로 8% 늘었으며 당기순이익은 175억원으로 872%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