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냉전시대] ①‘G제로’ 시대, 패권다툼은 ‘시계제로’

입력 2015-05-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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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냉전체제 붕괴후 리더십 흔들… ‘세계의 공장’ 중국, AIIB 설립 美 우방국 껴안아

1989년 11월 9일, 동서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동구 공산권의 붕괴, 소련의 해체와 냉전 체제의 붕괴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26년이 흐른 지금. 독일은 통일됐고, 미국과 대립각을 세웠던 소련은 해체됐으며 중국이 부상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유럽에선 단일 국가를 지향하는 유럽연합(EU)과 단일 통화를 사용하는 유로존이 탄생했다.

그러나 냉전 체제의 종식과 함께 평화로울 것만 같았던 세계는 새로운 냉전시대를 맞고 있다. G2인 미국과 중국이 양극으로 갈려 다방면에서 패권을 놓고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과거에는 미국의 주도 하에 세계 질서가 유지됐다고 하지만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금융 위기로 타격을 받은 후 절대적인 리더십을 잃은 지 오래다.

최근의 예가 미국이 북풍정책에서 햇볕정책으로 외교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단독 회담을 가졌다. 1956년 이후 59년 만에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편입, 중국의 해양 진출, 북한의 핵 개발 등으로 운신의 폭이 좁아지자 미국은 우선 냉전시대의 유물 청산에 나선 것이다.

미국이 쿠바와 국교 정상화에 나선 데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중국은 경제 규모에서는 물론 군사력에서도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설립해 미국의 우방국들까지 회유하고 나서며 미국을 고립시키고 있다.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국인 영국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57개국이 AIIB 참여를 선언했다. AIIB에 앞서 중국은 러시아·브라질·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함께 브릭스(BRICS) 개발은행 설립에 합의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파키스탄을 방문해 양국을 잇는 460억 달러(약 50조원) 규모의 경제회랑을 구축하기로 합의했고, 이달에는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유라시아 3개국을 순방, 유럽과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이어지는 신경제구상인 ‘일대일로’ 사업을 거듭 천명했다. 리커창 중국 총리도 남미 4개국을 순방, 브라질에서는 인프라와 자원 개발 등 533억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협정을 체결하는 등 사사건건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한때 두 자릿수 대 성장률을 구가하며 G2로 부상한 중국도 성장동력을 잃어가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오늘의 중국을 있게 한 제조업 경기가 둔화하는 가운데 부동산 경기침체, 겉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지방정부의 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중국 경제의 뇌관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힘의 균형이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상황. 세계 경제의 양대 축인 미국과 중국의 긴장 상태는 신냉전시대의 서막을 의미한다 것이 전문가의 견해다.

2011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G제로’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 그룹 회장은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리더 부재의 국제 질서에 대해 “냉전 체제 붕괴 이후 미국의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주의가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킨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 2008년 리먼 사태와 금융위기, 여기에 미 국가안전보장국(NSA)에 의한 스파이 활동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 사건 등을 단적인 예로 들었다. 그는 “지금 세계는 창조적 파괴의 시기에 접어들었다”며 권력의 분산, 집중, 혼돈 세 가지 움직임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G제로 시대에는 대국간의 전쟁은 없겠지만 과거 냉전시대보다 더 불안정할 것”이라며 “향후 세계 질서 속에서 미국, 중국 이외 국가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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