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와 영국이 유로존과 유럽연합(EU)에 균열을 일으키며 유럽을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는 가운데 이른바 신성불가침 국가로서 조용히 실속을 챙기는 것이 독일이다. 독일은 세계 4대 경제국이자 유로존 최대의 경제국이다. 높은 경쟁력을 배경으로 거액의 무역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독일의 만성적인 경상흑자가 유럽 거시경제에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최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올해 독일의 경상흑자 비율은 독일 국내총생산(GDP)의 7.9%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대로라면 독일은 5년 연속 GDP 대비 5%가 넘는 흑자 기록을 세우게 된다.
텔레그래프는 이 같은 경상흑자가 지속될 경우 독일이 유럽 경제를 집어삼키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렉시트 문제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
이에 대해선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 재무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2012년부터 독일의 지나친 수출 의존도가 유럽 경제의 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실제로 독일의 무역흑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2012년 독일의 무역흑자는 1579억 유로(약 190조원)로 독일 GDP의 5.9%를 차지했다. 경상수지 흑자는 1835억 유로로 독일 GDP의 6.9%에 달했다. EU 전체의 경상수지 흑자가 1120억 유로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독일이라는 한 나라에서 유럽 전체를 웃도는 이익을 올린 셈이다.
EU 역내 무역에서도 독일의 존재는 압도적이다. 독일의 EU 역내 무역흑자는 480억 유로인 반면 프랑스의 무역적자는 914억 유로에 달했다. 이 밖에 동유럽 등 경제 수준이 낮은 국가 대부분이 독일과의 무역 불균형에 시달리고 있다.
EU 법규가 제대로 집행될 경우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는 ‘거시경제적 불균형 절차’ 위반에 해당한다. EU의 거시경제적 불균형 절차는 GDP 대비 흑자 비율이 6% 이상 3년 연속 이어지면 처벌 절차를 시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EU법 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독일은 형벌적 제재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문제는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는 일회성이 아닌 만큼 처벌 경감 요인도 거의 없다는 점이다. EU 집행위원회는 1년 전에 현 상황에 상응하는 조치를 독일에 요구했다가 아무런 조치 없이 기존 입장에서 물러선 바 있다. 독일의 구조적 만성 흑자가 통화연맹의 기능까지 마비시키고 있는 셈이다.
유럽이 독일을 향해 속앓이만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독일이 역내 경제를 사실상 책임지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이 유럽 지역의 이익을 독차지하고 있지만 독일은 유럽 이외로 수출하기 위해 유럽 각국에서 원자재와 부품을 수입하고 있기도 하다. 독일의 국제 경쟁력이 약해지면 유럽 각국의 독일에 대한 수출이 오히려 감소할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다. 독일의 유럽 지역에서의 수입 점유율은 20%가 넘는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독일의 무역수지가 악화해 재정난에 직면하면 유럽 각국에 대한 경제 지원도 끊기게 된다. 유럽이 독일의 무역 불균형 실태를 눈감아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독일이 수출로 돈을 버는 것은 허용하되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에 지원 형태로 환원하는 방법밖에 현실적인 해결책이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