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론의 맞고 틀리고, 찬성 반대를 떠나서 20세기 유럽은 칼 마르크스가 절반의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칼 마르크스가 말했던 그런 공산주의 사회는 현실에 존재한 적이 없다. 그런 측면에서 공산당은 칼 마르크스 표현대로 유령이 맞을 듯하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유령은 ‘죽은 사람의 혼령’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유령은 존재하는 듯 하지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건 확실하다.
21세기 대한민국에도 유령이 떠다니고 있다. 하나가 아니다. 너무 많은 유령들이 떠다니고 있다.
정치권을 보면 ‘친노’라는 표현이 대표적일 것이다. 누가 친노냐고 물어보면 그 실체가 모호하다. 심지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아들인 노건호씨가 친노로 호칭될 정도이다. 친아들이 친노라는 식으로 표현될 정도면 거의 정신병 수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본시장에도 아주 오래된 유령이 어슬렁거리고 있다. ‘투기자본’이라는 유령이 바로 그것이다. ‘자본주의’, ‘시장’, ‘돈’이라고 하면 눈부터 치켜뜨는 사람들에게 ‘투기자본’은 거의 악마와 같은 존재다.
대한민국에서 대표적인 악마는 단연코 론스타일 것이다. 지금 론스타는 국내 법원에서는 스타타워 양도차익 과세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벌였다가 패소했다. 그리고 애국심 가득한 사람들로부터 아주 흠씬 두들겨 맞고 있다. ‘먹튀’라는 수식어는 이제 식상할 정도다. 자신이 억울하다고 생각되면 민형사 소송을 낼 수 있는 게 근대 법치주의 국가의 기본적인 인권인데 론스타는 소송을 제기해서는 안되는 모양이다.
미운털 제대로 박힌 론스타는 지금 미국에서 대한민국 정부와 투자자ㆍ국가간 소송(ISD)을 벌이고 있다. 틈만나면 ‘혈세’ 아까워하는 사람들한테 오죽할까 싶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지금 ‘물에 빠진 놈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으로 행동하는 건 아닌지 한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론스타가 먹튀했다는 그 외환은행은 2003년에 부도위기에 몰렸던 회사다. 대한민국 정부는 더 이상 투입할 공적자금도 없었다. 아마 공적자금이 있었다면 우리은행처럼 처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아무도 외환은행을 가져가려고 하지 않았다. 부실 규모가 너무 커서 당장 현찰만 1조원 넘게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론스타 아닌 다른 외국 사모펀드도 인수를 검토하다가 포기할 정도였다. 더구나 1조원 넘는 현금을 투입한다고 생존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론스타는 그야말로 NPL(Non Perporming Loan) 등급의 부실채권에 투자한 것이다. 론스타는 오히려 구원투수처럼 등장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 부실 덩어리 외환은행이 1조원 넘는 현금을 수혈받아서 좋은 회사로 거듭났다. 그리고 론스타는 차익을 회수했다. 그 차익이 너무 커서 먹튀인가? 부실채권에 투자했으니 투기자본인가? 아니면 외국 투자회사라서 투기자본인 걸까? 론스타는 사라져야 할 악마인가?
한때 SK그룹 경영권을 위협한다며 지탄받았던 소버린은 또 어떤가? 소버린도 투기자본으로 몰렸음은 불문가지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소버린은 주주를 무시하고 소수의 지분으로 전횡을 일삼던 한국 재벌기업의 문화를 싹 바꿔놓은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감히 평가할 수 있다. 소버린 이전과 이후의 SK그룹은 전혀 다른 회사다. 한국 자본주의 역시 그렇다.
실체도 불분명한 유령들이 많이 떠도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를 ‘유령’으로 만들고, 그 유령을 ‘공적’으로 몰아세우고, 그 공적을 대상으로 집단 린치를 가하는 행위를 우리는 독일의 나치즘과 중국의 문화혁명, 미국의 KKK를 통해 목격했다.
이 세상은 결코 악마와 천사들로 구분되어 사는 게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를 유령으로 만들고, 악마로 몰아세우는 그 사람들이 바로 이 사회의 건강성을 해치는 악마일지도 모른다. 유령없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