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 공청회’마저 무산…정부 주도 ‘노동시장 개혁’도 파행 조짐

입력 2015-05-28 17:42 수정 2015-05-2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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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 “일방적인 임금삭감 의도” 반발 거세

장년세대의 고용안정과 청년일자리 확대를 위한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노정간 갈등으로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정부가 독자적으로 개혁의 총대를 메겠다고 나섰지만 극심한 노동계 반발로 지난달 노사정 대타협 결렬 이후 한 발짝의 논의도 이뤄지지 못하는 모습이다.

급기야 정부가 민간 부문으로의 임금피크제 확산을 위해 준비한 ‘취업규칙 변경’ 공청회가 노동계의 반발로 파행을 겪었다. 고용노동부는 공청회 개최를 재추진해 논의를 이어간다는 입장이지만 공청회 무산으로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둘러싼 노정 갈등이 격화하며 춘투가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노동연구원은 28일 오후 1시 30분 여의도 CCMM빌딩에서 ‘임금체계 개편과 취업규칙 변경 공청회’를 열었지만, 공청회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조합원 200여명이 행사장을 점거하면서 시작부터 파행을 겪었다.

주최 측이 오후 1시 15분께 행사장을 개방하자 양대노총 관계자들이 피켓을 들고 몰려들었고 경찰과 충돌 끝에 행사장으로 들어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임금피크제와 취업규칙 변경 절차에 대한 규탄 발언과 구호를 외치며, 행사 진행을 저지했다.

오후 1시 40분께 이기권 고용부 장관이 축사를 위해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행사장에 들어왔지만 노총 관계자들이 이 장관의 입장을 막으면서 결국 10여분 만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 장관은 행사장을 나가며 “노동시장 개혁은 미래세대 주인인 우리 아들과 딸들, 지금 일하고 있는 분들의 고용안정을 위해서 필요하다”며 “내년 정년 60세 시행을 앞두고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으면 고용불안 우려가 현실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부는 이날 공청회에서 사용자가 취업규칙 변경시 충분한 노력을 했다면 과반수 노동조합의 동의 없이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다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이미 전날 공개한 공청회 발제문을 통해서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예외적으로 ‘노사 협의 거부’, ‘노조 권한 남용’ 등 노조 동의 없이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를 들어 ‘노조 동의 없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겠다는 뜻을 내놨다.

취업 규칙은 채용과 인사, 해고 등과 관련된 사규로 근로자 권리를 보호하고자 규칙 변경시 노조의 동의를 받게 돼 있다. 하지만 정부는 사측이 임금피크제 도입 과정에서 취업 규칙을 변경하고자 노사 협의 등 상당한 노력을 했는데도 노조가 논의를 거부하는 등 권한을 남용할 경우 노조 동의 없이 사측이 변경한 취업규칙은 합리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용부는 이러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구체적인 사례별로 지침을 만들어 공청회 등을 통해 의견 수렴을 한 뒤 다음달쯤 발표할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노동계는 노조 동의가 없는 임금피크제의 도입 가능성을 열어놓은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실제로 정년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임금만 삭감될 뿐이며 정부의 가이드라인 제시로 근로 조건을 바꾸는 것은 위법이라는 주장이다.

노동계는 지침 초안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의 연장선에서 상시 지속적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시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노총은 “하도급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과 노동삼권 보장이 빠진 비정규직 대책은 아무런 실효성도 갖지 못한다”며 “노동자와 국민을 기만하는 것으로 강력한 비판과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한국판 하르츠개혁(독일의 노동개혁) 표방하며 노사정 대타협을 통한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시동을 걸었지만 정부가 얼마나 강한 의지를 갖고 노동개혁을 추진했는지에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대통령이나 장관의 추진력이나 결단력, 강한 리더십 부재로 개혁의 동력이 약화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독일은 정부의 빠른 결단과 추진력을 기반으로 2003년 노동개혁 프로그램인 하르츠개혁에 매진한 결과 △미니잡ㆍ미디잡 허용 △인력파견 활성화 △실업급여 기간단축 △실업자 구직의무 강화 등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등을 통해 지난해 고용률 73.8%, 실업률 5.4%를 달성했다.

고용부는 이날 추후 일정을 조율해 ‘취업규칙 변경’ 공청회를 재추진하겠다는 태도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오늘 공청회가 무산된 만큼 앞으로의 어떻게 의견을 수렴할지는 내부적인 논의를 통해 방향을 다시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양대노총은 이날 공청회 저지에 이어 정부의 일방적인 노동시장 구조개선 정책에 강경 대응한다는 방침이어서 노정간 대화나 협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국노총은 다음달 15일부터 총파업 찬반투표를 해 7월 초 총파업을 벌인다는 방침이다. 7월 4일에는 서울에서 양대 노총의 제조부문 노동자들이 모여 총파업 결의대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좀 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실행력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변양균 한경연 거시연구실장은 이날 한국경제연구원 주최로 열린 ‘영국과 독일의 노동개혁과 한국 노동개혁 시사점’ 세미나에서 “우리나라도 독일과 같이 다양한 고용형태를 활성화시키는 등 노동시장 유연성과 역동성을 높여야 한다”면서 “노동시장 개혁의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동윤 단국대 명예교수는 “영국은 노사정위원회 같은 사회적 합의방식 대신 총리 주도하에 개혁을 추진하고 법과 원칙을 철저히 적용해 노동시장 규제가 완화되는 등 성공적인 개혁을 이뤄냈다”며 “우리나라와 방식에 차이는 있지만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시급한 사안인 만큼 보다 효율적인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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