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 통일경제와 남북 동반성장

입력 2015-06-0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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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전 국무총리

박근혜 정부의 임기가 반환점을 돌고 있다. 그러나 남북 관계는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없다. 남북이 각자의 방식으로 관계 개선의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상대방은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있다. 서로 파국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믿지 못하고 상대가 굴복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왜 그럴까? 갖가지 쟁점이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천안함 폭침 이후 취해진 5·24조치가 있다. 남북한 간 경제교류를 전면 금지한 이후 기업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가고 남북관계는 냉전시대로 후퇴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5·24조치 이후 남한이 입은 직접 피해액을 145억9000만 달러로 추산했다. 그 사이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경제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남한은 선점 이익을 놓친 채 손 놓고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통일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결과로 보는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쪽박’이 될 가능성이 짙다. 남북은 70년을 서로 다른 체제와 다른 이념으로 살아왔다. 한반도가 분단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 정도로 심리적인 간극은 크다. 경제력 격차는 42배에 이른다. 통일과정에서 그 부담은 주로 남한 국민들이 맡게 될 것이다.

경제만이 아니다. 정치, 문화, 복지 등 사회운영시스템은 통일 전·후 북한을 주도적으로 견인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돼 있다고 말할 수 있나. 공들인 경제는 활력을 잃고 어렵게 성취한 민주주의는 작동에 문제가 생겼다. 무엇보다 승자 독식으로 인한 양극화가 경제 영역을 넘어 사회 전 영역에 구조화되고 있다.

국민통합은 통일을 추진하는 기본 조건이다. 따라서 경쟁의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고, 규칙은 공정하게 적용하며, 패배자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것은 통일을 준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동반성장의 가치가 여기에 있다.

현재의 북한 경제로는 통일이 사실상 어렵다. 북한 경제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섣부른 통일은 남북한 모두에 심각한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남한이 경제적 지원과 협력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그 첫 단추가 바로 5년째 중단돼 있는 활발한 남북 경제 협력의 재가동이다.

이를 위해서는 5·24조치의 단계적 해제가 필요하다. 남북 간 경제 사업을 통해 남한의 풍부한 자본과 기술이 개발할 곳은 많은데 돈과 기술이 없는 북한으로 흘러가 남북 경제가 동반성장하겠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남북경협은 해당 기업이 얻는 이익이 다가 아니다. 지속적인 교역증대로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고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해 궁극적으로는 북한체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핵심이다.

광복 70년이다. 실질적 분단 70년이기도 하다. 그동안 남한은 고도성장과 민주화를 성취하며 세계 일류국가에 근접한 반면 북한은 ‘유일 수령 세습체제’와 절대빈곤 상태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동북아는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가 사안에 따라 서로 협력하고 갈등하는 복잡한 구도가 전개되고 있다. 남한이 과거 70년보다 훨씬 불투명한 미래의 과제와 직면한 것이다.

이 파고를 넘기 위해서는 기존 관념인 ‘냉전’과 ‘당위’에서 벗어나야 한다. 냉전적 사고와 민족적 감성에 기댄 대북 정책은 변덕스러운 남북관계를 잘 관리할 수 없다.

통일은 남북이 함께 서로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통일 준비단계에서부터 북한경제의 발전과 이행을 차근차근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통일이 가시화되기 전에 북한이 상당 수준의 경제적 발전을 이뤄 나가도록 남한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북한이 시장경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체제의 변화를 유도한다면 통일 비용 부담은 그만큼 감소하게 된다. 이는 남한 경제에도 상당한 실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체제와 이념, 민족적 당위의 논리보다 남북한의 상생공영이라는 상호 이익을 바탕으로 한 동반성장의 가치가 통일 논의 중심으로 들어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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