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장수 뮤지컬의 덕목-이유리 청강대 교수

입력 2015-06-0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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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뮤지컬스쿨 교수ㆍ뮤지컬 평론가

뮤지컬 ‘캣츠’의 나이는 서른네 살이다. 1981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본 뮤지컬로 생명력을 연장하고 있다.

한국 배우인 양준모가 일본에서 장발장 역을 멋지게 연기하고 있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1985년에 영국 런던에서 초연된 이래 30년간 전 세계에서 투어 공연됐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1986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됐고 1988년 미국으로 건너가 브로드웨이 뮤지컬 역사상 최장기 공연으로 기록되고 있다.

1989년에 시작돼 지금 런던에서 25주년 기념 공연 중인 뮤지컬 ‘미스 사이공’은 한국의 뮤지컬 배우 홍광호의 출연으로 우리에게 한결 친근하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뮤지컬들의 장수 기록이다. 이 공연들은 모두 초연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공연하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롱런하고 있고 흥행 또한 여전히 성공 중이다.

1996년에 만들어진 뮤지컬 ‘렌트’, 1997년에 초연된 또 하나의 성공작인 뮤지컬 ‘라이언 킹’도 이전의 뮤지컬 문법을 깬 혁신적인 작품으로 이후 20년 가까이 새로운 뮤지컬 역사를 매일 밤 펼치고 있다.

이 공연들의 공통점은 20년이 지나도 유효한 스토리텔링과 음악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진리나 의미를 스토리 속에 담고 시대와 상관없이 사람들의 감성을 움직이는 음악으로 그 강렬한 생명력을 자가 발전시켜 온 것이다. 그런 작품의 생명력을 위해 ‘렌트’의 작가이며 작곡가인 조나단 라슨은 7년간을 오로지 작품 창작에만 몰두했고 ‘라이언 킹’의 연출가 줄리 테이머는 애니메이션 속의 동물들을 무대에서 살아 숨쉬게 하는 데 몇 년을 바쳤다.

올해는 한국 창작뮤지컬 중에서도 장수 뮤지컬의 기념 공연이 이어진다. 지금은 원로배우가 된 남경주, 최정원 콤비 플레이어의 시초이며 한국 창작뮤지컬 제작 방식 최초로 프로듀서를 중심으로 작가와 작곡가, 연출가의 협업으로 창작된 ‘사랑은 비를 타고’가 올해 20주년이다.

1995년 한국에서 대형 창작뮤지컬을 전문적인 마케팅 방식을 도입해 뮤지컬 전문 음악감독과 전문 안무감독을 계발하며 전문 투자 후원자를 유치하고 몇 단계의 창작 과정을 체계적으로 시도했던 창작뮤지컬 ‘명성황후’의 성공 신화도 올해 20주년 기념 공연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렌트’처럼 새롭고 진지한 주제로 한국 뮤지컬에 젊은 피를 수혈했던 창작뮤지컬 ‘빨래’ 또한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뮤지컬 전문가들은 한국 창작뮤지컬의 역사를 1966년에 예그린악단이 제작한 창작뮤지컬 ‘살짜기옵소예’에서 점찍는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겨우 50년의 역사다. 그런데 한편으론 장수뮤지컬을 만들어 내는 데 짧은 기간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한국 창작뮤지컬 시장은 한 손가락도 남아도는 장수뮤지컬 수를 지녔을 뿐이다. 그것도 해외 유명 뮤지컬처럼 전용 공연장에서 매일 밤 지속적으로 막 올리는 공연은 단 한 편도 없다. 왜 그럴까. 작가와 작곡가가 몇 년간을 처절한 협업을 인내하면서 시대를 초월하는 이야기와 음악을 창작하는 저력으로 탄생시킨 세계적인 뮤지컬의 덕목이 우리에게는 없는 걸까.

올해 10주년과 20주년 기념 공연을 하는 세 작품 모두 출발은 기존의 뮤지컬 풍토와 문법을 깨는 용기 있는 도전이었고 제작자 또는 창작자의 지속적인 고군분투의 결과다. 게다가 한국의 뮤지컬 종사자들은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낸 상상력과 창의성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게다가 예부터 가무악을 생활 속에서 즐겨 신명과 한이 체화된 민족성이 자양분인 데다 저돌적인 추진력 또한 큰 에너지다.

그러니 한국의 뮤지컬 창작자들은 얼마든지 몇 십년 롱런하는 생명력 있는 뮤지컬을 잉태할 모태일 수 있다. 단, 뮤지컬 한 편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철저한 협업과 장기간의 작품 계발 연구가 중요함을 새삼 인식하고 실천한다는 전제가 중요하다. 그것이 창작력보다 더 강력한 뮤지컬 창조의 기본적인 덕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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