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민, 연기가 삶의 전부인 배우, 그 힘은?[배국남의 스타탐험]

입력 2015-06-10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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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된 것만 해도 영광스럽다. 무지하게 떨린다. 좋은 작품을 하게 되니 좋은 일이 생기는 것 같다.”이성민이 지난 5월26일 열린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미생’으로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한 뒤 그의 소감을 들으니 지난해 전국을 강타해 대중문화 신드롬이 됐던‘미생’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당신들이 술맛을 알아?”임원에게 밀려 실력과 성실성에도 불구하고 맡고 있던 프로젝트를 뺏겨 술 한 잔으로 허한 속을 털어내며 변기통을 부여잡고 남몰래 눈물을 흘리던 오과장(이성민)모습이 다시 가슴을 후벼판다. 이 땅의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공감했을 그 장면이.

직장인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미생’신드롬을 몰고 온 드라마 ‘미생’의 오상식 과장 역을 연기한 이성민(46)이 아니었다면 시청자의 가슴에 그렇게 큰 공감의 울림을 줬을까. 윤태호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미생’은 수많은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키며 가치 있는 사회적 담론이 되고 의미 있는 문화적 신드롬이 된 것은 연기자 이성민의 존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생’은 바둑이 전부였던 장그래(임시완 분)가 프로 입단이 좌절된 뒤 우여곡절 끝에 인턴을 거쳐 비정규직 종합상사 직원으로 입사해 전개되는 직장생활을 중심으로 직장인의 팍팍한 삶과 생활, 그리고 그들의 애환을 농밀하고 현실감 있게 바둑에 빗대어 잘 그려냈다. 분명 주연은 임시완이지만 ‘미생’신드롬을 일으키고 드라마에 진정성을 불어넣으며 성공으로 이끈 주역은 이성민 이었다.

회사 권력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일에 승부를 걸지만 실세라인이 없어 승진에 밀리고 프로젝트마저 뺏기지만 후배들을 위해 무릎을 꿇는 가슴 따뜻한 중년 직장인이다. 시청자들은 그의 대사 하나에 가슴이 먹먹해하고, 그의 직장인 연기에 격한 공감을 표시했다.

그런 이성민를 향해 ‘미생’에 함께 출연했던 동료 연기자들은“보는 것만으로 도움이 되는 뛰어난 연기력의 선배 연기자”(김대명)“이성민은 그냥 연기의 신이다”(오대석)라고 극찬을 했다. ‘미생’김원석PD는 한발 더 나아간다. “이성민의 연기는 신인들이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이성민은 시청자와 관객에게 어떤 연기자의 모습으로 떠오를까. 이성민 하면 딱히 떠오르는 이미지나 캐릭터가 없다. 그렇다고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스타나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낸 연기자도 아니다. 이성민이 물 같은 배우이기 때문이다. 컵에 넣으면 컵이 되고 주전자에 넣으면 주전자 모양이 되는 그런 연기자다. ‘미생’ 방송과 동시에 개봉한 영화 ‘빅매치’에선 천재 악당에게 납치되는 주인공 형인 최영호역을 맡았다. 거기에는 오상식 과장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이성민은 오롯이 캐릭터로만 시청자와 관객을 만나는 그런 연기자다.

“우연히 접한 연극에 운명처럼 빠졌지요. 연기가 정말 좋았어요.”이성민은 연기가 좋아 고향 경북 봉화를 떠나 대구 연극무대에서 연기자로서 관객을 처음 만났다. 이후 서울 대학로 무대에 섰다. 그는 1985년 연극 배우로 대중과 첫 만남을 가졌지만 그의 이름 석자를 아는 관객은 많지 않았다.

“생활고 때문에 쪽방에서 배고파 울었고 가난한 연극배우 시절에 아내와 결혼을 해 단칸방에 살면서 아기는 갖지 말자고 약속했다. 딸에게 제대로 된 고기 한번 사주지 못했다.”그의 연기에 대한 열정과 뛰어난 연기력의 보상은 가혹했다.

송강호가 어느 자리에서나 추천할 만큼 연극무대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쌓은 이성민은 영화와 드라마로 활동영역을 넓혔지만 무명 연기자의 멍에는 벗어나지 못했다. 2001년 영화 ‘Black & White’도둑1, 2004년 ‘맹부삼천지교’사채조폭 1, ‘인어공주’과일가게 주인역…이성민이 맡은 배역은 이름도 없었다.

뛰어난 연기력을 가졌음에도 30년 연기자 생활 중 27년을 무명으로 살았다. 연기자에게 무명이라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준다. 하지만 그는 연극, 영화, 그리고 드라마의 다양한 캐릭터를 오가며 연기에 매진했다. 시청자가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맡은 캐릭터가 단역이든 조연이든 간에 이성민은 그만의 연기 스타일로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고 배역의 진정성을 드러냈다. “작은 배역은 있어도 작은 배우는 없다”는 말을 온몸으로 보여준 배우가 바로 이성민이다.

이성민은 “주목을 받는 건 중요하지 않다. 연기를 하다 보면 금방 지칠 경우가 많다. 그래도 지금 하고 있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지치지 않고 열심히 달리는 것이 필요하다. 마흔한 살이 돼서야 월세 걱정을 안 해 봤다”고 말한다.

무명 연기자로서 겪는 고통 속에서도 잡초 같은 강한 생명력으로 무대와 스크린, 브라운관을 누볐다. 그런 때문인지 이성민의 연기관은 처절하기 까지 하다. “일반 직장인들이 먹고 살기위해 직장에서 최선을 다해 일을 하듯 연기는 먹고 살아야 하는 하나의 어떤 일이며, 스트레스 받아도 열심히 해야 한다. 연예인이라고 특별한 건 없다.”

이성민이라는 연기자의 강력한 존재감을 대중의 뇌리에 심어주며 무명에서 유명으로 위상변화를 초래한 작품이 바로 2012년 드라마 ‘골든타임’이다. 응급의학센터 외과의사 최인혁역을 맡으며 강력한 카리스마와 빼어난 사실적 연기로 시청자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20여년간 쌓았던 연기의 내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스타덤에 오른 그는 의외로 담담했다. ‘골든 타임’직후 만났을 때 이성민은 “지금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를 겪고 있는 시기예요. 사람들도 많이 알아보고 인정해주죠. 그러나 스트레스가 많이 생기는 시기이기도 해요. 책임감의 무게가 커지니까요.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유명세를 탄 후 불편해진 게 더 많은 것 같아요.”그리고 한 마디 웃으며 덧붙였다. “장동건씨는 정말 힘들겠어요.”

이성민은 아직도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힘들며 부담스럽다고 했다. 유명세를 누리기보다는 연기 하는 그자체가 좋을 뿐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가 스타덤에 오른 이후 행보는 의외였다. 무명 연기자가 스타덤에 오른 이후에는 주로 주연만을 고집한다. 하지만 이성민은 달랐다. 드라마 ‘미스코리아’‘빅맨’영화 ‘변호인’‘빅매치’에 이르기까지 이성민이 맡은 것은 조연 캐릭터였다. 심지어 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아랑 사또전’그리고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단역으로 특별 출연까지 했다.

(사진=tvN제공)

“가끔 제가 너무 자신이 없어서 들어온 캐릭터를 못하겠다고 한 적은 있다. 하지만 배역의 비중이 적어서 안한 적은 없다. 비중이 크고 작은 것은 중요하지 않는 것 같다. 맡은 캐릭터를 얼마나 진정성 있게 연기해 시청자나 관객이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성민은 스타가 된 뒤에 다른 스타 연기자와 또 다른 차별점을 보였다. 바로 연극 무대에 꾸준히 오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타가 된 연기자들이 연극무대에 잘 오르지 않는 것은 영화와 드라마에 비해 힘은 배로 들면서 수입은 현저하게 적기 때문이다. 이성민은 “연극은 내가 처음 했던 작업이고, 또 선배님들과 관객들을 통해 저에 대한 재평가를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연극을 하면 꼭 집에 가는 그런 느낌이다”며 연극의 무한 애정을 보였다.

연기자로서의 초심과 평정심을 잃지 않았기에 ‘미생’의 이성민의 연기를 보고 시청자들은 “눈물 난다”“어쩌면 나를 보는 것 같다”“가슴이 먹먹하다”“내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공감과 감동의 찬사들을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미생’의 진짜 주연은 이성민이다 라는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

작품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연기자로서 인기를 더 얻었어도, 연기자 이성민은 변한 게 없다. 캐릭터를 통해 대중을 웃고 울리는 진짜 광대이고 싶기 때문이다. 이성민은 스타라는 화려한 인기에서 살아나는 연기자가 아니라 캐릭터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배우이고 싶어한다. 이성민은 힘주어 말한다. “전 정말 연기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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