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12일 “앞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인상 등으로 정책여건이 빠르게 변할 수 있겠지만 경기 회복세가 미흡할 경우 통화정책의 기조를 조정하는 데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이날 한은 창립 65주년 기념사를 통해 “국내 경제의 회복세 지속을 낙관하기 어려운 만큼 통화정책은 완화기조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운용해 나가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에 따라 이 총재가 미 연준이 연내 금리인상을 단행하더라도 섣붙리 국내 금리인상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 총재는 또 “우리 경제는 올해 들어 수출이 부진한 가운데서도 소비 등 내수가 개선되면서 완만하게나마 회복되는 움직임을 보여왔다”며 “한은이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금융중개지원대출을 증액하는 등 통화정책 기조를 크게 완화한 것이 경기 개선에 도움을 줬다”고 평가했다.
앞서 작년 4월 취임한 이 총재는 기준금리를 지난해 8월과 10월에 각각 0.25%포인트씩 내린 데 이어 올 3월과 6월에도 0.25%포인트 인하했다. 이에 따라 현 기준금리는 사상 최저치인 연 1.50%다.
이 총재는 우리 경제가 견실한 성장세를 지속해 나가기 위해 극복해야 할 난관도 제시했다. 그는 “국내 상황을 보면,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요인들로 인해 성장동력이 더욱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며 “부문간 불균형, 노동시장 경직성, 과도한 규제 등이 성장과 고용, 생산과 분배의 선순환을 제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특히 “우리 사회의 주역으로 커나가야 할 젊은 세대의 취업난은 미래의 성장잠재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
이어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성장세 둔화와 수입 대체 전략, 엔화와 유로화 약세에 따른 국내 기업의 가격경쟁력 저하로 하반기 들어서도 수출 부진이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또 “미 연준의 통화정책 정상화, 그리스 채무협상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국내외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확대시킬 수 있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최근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가계부채에 대한 경각심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가계부채 문제가 당장 경제안정을 위협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나 지금과 같이 빠른 증가세가 지속될 경우 가계소비를 제약하고 금융시스템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며 “따라서 정부, 감독당국 등과 긴밀히 협력해 가계부채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전했다.
구조개혁 노력도 촉구했다. 이 총재는 “구조개혁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주도해야 하겠지만 한은으로서도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라며 “무엇보다 통화정책 기조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거시경제의 안정은 물론 구조개혁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하겠다”라고 말했다.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가 미흡하면 경기 회복이 지체돼 경제가 구조개혁의 충격을 견뎌내기 어렵고, 반대로 완화 정도가 과도하면 경제주체들의 개혁 유인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더불어 이 총재는 “구조개혁에 대한 조사연구를 강화해 현실 적합성이 높은 정책대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한은 조직을 다잡기도 했다. 이 총재는 “정책여건이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할 때는 관행이나 과거의 경험에 의존해서는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만들기 어렵다”며 “유연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업무에 임해 달라” 당부했다. 또 “상사의 지시나 관성에 의해서만 직무를 수행하면 조직은 물론 개인의 발전도 이룰 수 없다”며 “업무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 달라”고 주문했다.
한편 이 총재는 이번 창립기념일을 맞아 공익, 중립, 책임, 소통, 전문성을 조직의 핵심 가치로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