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그놈의 메르스 마스크 때문에

입력 2015-06-1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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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1주일 전 정기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간 일이 있다. 까맣게 예약을 잊고 있다가 다른 날 간 건데, 메르스 때문에 좀 신경이 쓰였다. 그러나 이걸 아직도 ‘메리츠’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으니 우습다(그만큼 보험회사 광고가 먹힌 건가?). 그런가 하면 커피숍에서 캐러멜 시럽을 손 소독제인 줄 알고 짜서 손에 비비는 사람도 있다.

하여간 병원에 간다고 했더니 본처(나는 흔히 하는 말인데, 듣는 사람들이 “아니, 첩도 있어요?” 하고 묻는다)가 나보다 더 긴장하면서 이것저것 신신당부를 했다. 그리고 어디서 구했는지 ‘N95…’ 뭐라고 표기된 의료용 마스크를 주며 “이걸 꼭 쓰고 가서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할 때도 벗지 말라”고 했다. 마스크를 뒤집어씌운 뒤 “말을 해 보라”고 연습을 시키기까지 했다.

그런데 병원 로비에 들어가면서 그걸 쓰려 했으나 집에서 대충 건성으로 듣고 온 탓인지 잘 되지 않았다. 마스크는 보통 귀에 거는데 이 푸르고 튼튼한 마스크는 그게 아니었다. 그냥 귀에 걸었더니 가로가 돼야 할 마스크가 세로가 되어 코까지 막았다. 할 수 없이 손에 들고 가 진료 신청을 한 뒤 간호사에게 물어 어찌 어찌 마스크를 썼다. 알고 보니 끈을 머리 위로 넘기게 돼 있었다.

간호사는 “아이 아버님, 이걸 모르세요?” 그러면서 막 웃었다(내가 왜 지 아버님이야?). 한 2~3분 마스크를 하고 있는데 줄이 조여 귀가 아프고 숨이 막힐 것처럼 답답했다. 숨을 쉬어 보니 입냄새도 참기 어려웠다(입에서는 왜 냄새가 날까? 눈이나 귀는 안 그런데).

그렇게 기다리다가 마스크를 하고 말하는 게 괜히 미안해서 마스크를 벗고 의사 앞에 앉았다. 내 것보다 좋지 않은 마스크를 착용한 여의사는 몇 마디 물어보더니 이내 가라고 했다.

병원을 나와서는 늘 다니는 약국에 가 약을 받았다. 그 약국은 뇌졸중을 ‘뇌졸증’이라고 써 붙인 곳이다. 몇 달 전 틀렸다고 알려주었더니 50대 남자 약사는 한심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뇌에졸증이 맞아요”라고 한 일이 있다. 나도 한심스러워 “사전 찾아보세요” 하고 돌아왔는데, 그는 고치지도 않고 손님과 친절 명랑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다음부터 내가 여기 오나 봐라’ 했다. 이런 중대 결심을 한 것은 순전히 마스크가 불편한 때문이었다.

그날 저녁 귀가해서는 본처에게서 한마디를 들었다. 병원 갈 때 마스크를 꼭 쓰고 진료가 끝나자마자 버리고 오라 했는데, 약 담은 비닐 주머니에 넣어 왔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 튼튼한 마스크를 버리기가 아까웠다.

어쨌든 고품질 마스크를 버리고 난 다음 날 집에서 가사를 돌보다가 소금 항아리 하나를 깨고 물병의 뚜껑을 떨어뜨려 고무 패킹(흔히 바킹이라고 하는 것)을 깨먹었다. 내 본처는 소금 부대를 우겨넣은 항아리를 밀라고 했는데, ‘힘자랑’한답시고 번쩍 들었더니 손잡이 두 개 중 하나가 똑 떨어져버렸다. 나는 손가락을 찔려 피를 보고 말았다. 완전히 ‘깻박치는 날’이었다.

이 모든 게 메르스 마스크 때문에 생체 리듬이 깨졌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길거리나 산에서 눈만 내놓고 온통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이들(특히 여자들!)을 경멸 혐오 타기하는 사람이다. 보기만 해도 기분 나쁜 모습인데, 요즘 메르스 때문에 ‘복면 강도’가 부쩍 늘어 더 불편하다.

마스크, 나는야 정말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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