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처펀드의 공습①] 엘리엇의 두 얼굴…경영 관여 행동주의 투자? “결국 먹튀”

입력 2015-06-17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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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채무위기 국가•기업이 타깃…부실채권 사들여 수십배의 수익

지난 4일 국내 증시에 낯익은 해외 펀드의 이름이 올라왔다. 이날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삼성물산의 지분 7.12%를 보유했으며, 제일모직과의 합병은 불공정하다며 반기를 들었다. 이후 엘리엇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주주총회 결의에 의한 중간배당을 요구하는가 하면, 주주총회 결의 금지 및 자사주 처분 금지 등 2건의 가처분 소송을 잇달아 제기하며 삼성물산을 압박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전형적인 벌처펀드의 주도면밀함을 보이는 엘리엇의 속내는 무엇인지, 주장은 과연 정당한지, 전문가들의 시각은 어떤지 등 이번 사태에 대해 5회에 걸쳐 정밀 진단한다.

①주주권익 뒤에 숨겨진 진실

“그들의 목적은 명백하다. 돈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삼성물산에 대한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공격이 이뤄진 직후 국내외 전문가들이 내놓은 평가다.

우리나라에서 헤지펀드로 불리는 엘리엇은 외국에서 벌처펀드의 선구자로 불린다. 벌처펀드는 약해 보이는 먹이를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썩은 시체까지 파먹는 ‘독수리(vulture)’와 매우 흡사한 행동양식을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벌처펀드의 목적은 오로지 돈벌이다. 엘리엇의 먹잇감이었던 기업과 국가가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를 봐도 명확한 명제다. 주주들의 권익을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반대한다는 엘리엇의 주장이 실상은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한 구실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익 앞에선 인권도 뒷전…갖은 방법 동원 = 엘리엇이 전 세계에 남긴 행적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미국 탐사보도 전문가 그레그 팰러스트는 2011년 저서 ‘벌처스 피크닉(Vultures Picnic)’을 통해 엘리엇의 실체를 낱낱이 공개했다. 저서에 따르면 엘리엇은 법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해 어떻게든 목적을 달성한다. 더불어 지분 투자,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경영에 간섭한 후 주가나 기업 가치를 띄운 후 되팔아 이윤을 남기는 패턴을 보인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의 인권마저 무시하는 잔인한 성향을 띤다.

2005년 미국 석면회사 오웬스코닝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엘리엇은 일부 직원이 석면 흡입으로 사망하면서 막대한 피해보상금으로 파산한 오웬스코닝을 헐값에 인수했다. 이후 엘리엇의 폴 싱어 회장은 자신의 정치적 인맥을 동원해 50만명에 달하는 직원들에게 지급해야 할 보상금을 대폭 깎았다. 팰러스트는 당시 미국 사회에 일어난 ‘석면증 꾀병 캠페인’의 배후로 엘리엇을 지목했다. 결국 엘리엇은 크게 상승한 회사가치 덕에 10억 달러(약 1조원)를 챙겼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도 마다치 않는 엘리엇의 모습은 제너럴모터스(GM)의 자회사였던 델파이 사례에도 잘 드러난다. 엘리엇은 2008~2009년 세계 금융위기로 제너럴모터스(GM)가 파산위기에 처했을 때 델파이를 싸게 사들였다. 이후 엘리엇은 GM의 회생계획을 볼모로 델파이의 채무 탕감과 자금 지원을 미국 정부에 요청하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결국 미국 정부는 요구사항을 거의 다 들어줬고, 엘리엇은 델파이를 재상장시켜서 12억9000만 달러(약 1조5000억원)의 이익을 챙겼다.

◇국가 부도도 개의치 않는 무자비한 자본 = 전문가들은 돈 앞에서 국가의 존엄성도 개의치 않는 엘리엇의 무자비한 모습은 이번 삼성의 사태를 우리 정부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중요한 근거가 된다고 입을 모은다.

엘리엇은 주로 아프리카와 중남미 국가를 노리며, 국제기구 등에서 보내는 원조마저 채무를 갚는 데 먼저 사용하라고 할 정도로 뻔뻔함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장섭 싱가포르대학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벌처펀드는 가장 역겨운 음모를 세계 곳곳에서 벌인다”면서 “아프리카의 기아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한 원조금 지급까지 중단시키며 최빈국에서 거액을 챙겨간다”고 밝혔다.

엘리엇이 국가를 상대로 처음 큰돈을 번 곳은 페루였다. 페루는 1990년대 미국과 중남미 은행들과의 ‘브래디플랜’을 통해 채권의 상당부문을 탕감받게 됐었다. 하지만 1996년 액면가 2070만 달러(약 230억원) 페루 채권을 1140만 달러(약 130억원)에 산 엘리엇은 페루가 내지 않은 이자까지 합쳐 5800만 달러(약 650억원)를 지급하지 않으면 브래디플랜이 집행되지 못하도록 하는 소송을 미국 뉴욕법원에 냈다. 소송에 승소한 엘리엇은 5배가 넘는 돈을 챙겼다.

특히 엘리엇은 지난해 아르헨티나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2001년 디폴트를 선언한 아르헨티나는 이후 국제 채권단과 채무를 최대 75%까지 탕감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액면가 6억3000만 달러(약 7050억원)의 채권을 7% 정도밖에 안 되는 4800만 달러(약 540억원)에 국채를 매입한 엘리엇은 전액을 상환하라며 소송을 걸었다. 결국 엘리엇은 13억3000만 달러(약 1조5000억원)를 챙겨 30배에 이르는 수익을 올렸다.

이 과정에서 아르헨티나가 돈을 갚지 않자 아프리카 가나에 정박한 군함을 압류하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일을 벌이기도 했다. 반면 소송에서 진 아르헨티나는 다른 채권자들에게도 전액을 갚아야 하는 처지가 되면서 13년 만에 다시 국가 부도 사태를 맞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과 엘리엇 사태를 단순히 기업과 펀드의 지분 확보 대결로 보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면서 “오로지 엘리엇의 관심은 이번 분란을 통해 자신들이 얼마를 더 챙길 수 있는지 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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