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리 칼럼] 기업사회공헌의 갑질, 멍드는 비영리단체

입력 2015-06-1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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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권 코스리(한국SR전략연구소) 부소장

우리 사회에 전문 모금 단체가 생기고 기부 문화가 형성된 이래로, 우리는 기부의 ‘양적 성장’에 골몰해왔다. 정부 주도로 진행되는 복지에는 늘 시스템의 한계가 있었던 만큼, 복지의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한 민간의 노력은 절실했다.

기부와 모금에 있어 양적 성장의 견인차는 기업의 사회공헌사업이다. 전경련이 2014년 발간한 사회공헌백서에 따르면 주요기업 234개사가 2013년 한 해 지출한 사회공헌지출은 2조8000억원에 이른다. 주요 기업재단 62개는 같은 기간 3조2000억원 가량을 지출했다.

6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자금만이 아니다. 기업은 임직원 봉사활동이나 재능나눔을 통해 더 많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요즘은 공유가치창출(CSV)이라는 차원에서 아예 사회문제의 해결을 기업 비즈니스의 목적 중 하나로 사고하기도 한다.

기업 외부에는 기업사회공헌의 협력 파트너들이 존재한다. 비영리단체(NPO), 비정부조직(NGO), 사회적기업, 소셜벤쳐 등이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설문에 답한 기업 중 절반 가량은 NPO와 공동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기업과 비영리조직이 이루는 생태계에 학계와 정부ㆍ지자체가 참여한다면 우리 사회를 이롭게 하는 거대한 생태계가 완성된다.

그런데 이 생태계에 ‘갑’과 ‘을’이 생겼다. 선(善)하기만 할 것 같은 기부와 모금의 생태계에 갑의 횡포가 있다니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비영리단체들로부터 들어보니, 갑의 횡포는 상상 이상이었다.

가장 흔한 것이 비영리단체를 외주대행사로 여기는 태도다. 요즘 유행하는 기업의 해외자원봉사의 사례가 있다. 정상적인 기업과 비영리단체의 관계라면 비영리단체가 기업에게 해줄 것은 전문적인 부분들이다. 해외 봉사현장의 욕구를 제대로 알려주고, 기업이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을지 가이드를 주고, 기업의 봉사활동이 안전하게 진행되도록 협조하고, 봉사활동 후 그 성과가 지역사회에 남도록 잘 정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봉사활동이 촉발한 지역사회의 변화상을 기업에게 잘 전달해주면 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지역사회의 욕구와 무관하게 기업이 홍보하기에 좋은 과시용 아이템을 강요당하는 것'은 기본이고 '기업 임직원의 항공원 예약이나 행사장 세팅 같은 대행사 업무를 수행'하다 '홍보를 제대로 못한다고 아쉬운 소리를 듣기도' 한다. 현지에서 십수년간 활동한 비영리단체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것은 그나마 괜찮다고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굴지의 기업 중 하나는 자신들이 후원하는 사업에 참여한 수혜자들을 한 자리에 동원해 “우리가 여러분들의 어려운 삶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고 반복적으로 얘기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아이들에게 가난에 대한 낙인감을 재차 심어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이미 충분히 고마워하고 있는 상태였음에도 말이다.

한 비영리단체 담당자는 “소외계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니 그런 식으로 상처를 주는 것”이라며 분노했다. 뿐만 아니다. 또 다른 대기업의 사례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기업논리에 비추어 납득하기 힘든 것이었다. 보건의료프로그램이 필요한 개발도상국의 한 지역에 굳이 필요가 불분명한 학교를 지었고, 그 탓에 그 학교는 지역사회의 흉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언론에 내보낼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수억을 버린 셈”인데, 놀랍게도 그 기업은 학교 건립 후 그 학교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전혀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더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 “우리 단체에 기부금을 준 기업은 그 기부금으로 다시 자사 제품을 구매하라고 강요했습니다. 공개 입찰을 진행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던 업체가 있음에도 기부기업의 제품을 구매해야 했습니다. 이건 기업의 매출 부풀리기에 비영리단체가 이용당한 것 아닌가요? 차라리 처음부터 물품을 기증하면 될 텐데, 세제 혜택을 위한 기부금 처리도 다 받은 상태에서 말입니다.”

아예 비영리단체에서 진행 중이던 아이템을 기업이 추진한 것인 양 홍보를 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기부금을 주더니 저희 단체의 사업을 인수한 것처럼 굴더라고요. 저희는 이 기업이 기부를 중지하더라도 계속 이 사업을 해야 하는데, 영원히 지원할 것도 아니면서 생색을 다 내버리면 저희는 새로운 기부자를 발굴하기도 힘들어지고 사업을 제대로 진행하기도 어려워집니다.”

비영리단체의 활동가들이 한마디 할 때마다 귀에 익숙한 기업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이름이 공개되면 우리 단체가 기부를 못 받게 될 수도 있으니 무조건 비공개로 해주어야 한다”고 얘기할 때는 자조적이기까지 했다.

기업사회공헌이 이렇게 비영리조직과의 파트너십에서 ‘갑’의 위치에 설 수 있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취약한 비영리조직의 생태계 때문이다. 규모가 작은 비영리조직은 기업이 갑질을 하더라도 일단 모금이 급하다. 그러니 기업의 요구를 일단 수용한다. 적극적으로 기업의 요구를 수용하는 단체에겐 좋은 평판이 생긴다. 이런 조직은 기업사회공헌 업계에 “매너가 좋은 단체”, 혹은 “말이 통하는 단체”, 더 나아가서는 “열정적이고 유능한 단체”로 인식되기 쉽다. 그리고 이런 단체에 기부금이 쏠린다. 비영리단체에 대한 평판이 ‘기업사회공헌과의 친숙함’에 좌지우지되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집단으로서의 비영리단체의 목적성과 전문성이 훼손된다. 함에도 기부금이 필요한 비영리단체들은 이런 기업의 요구에 무력하다. 이런 상황의 반복으로 비영리단체를 떠나는 젊은 활동가들도 많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비영리단체의 활동가들은 “기업이 비영리단체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파트너십을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영리단체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고유한 목적을 가진 전문집단이라는 인식을 토대로 파트너십을 맺자는 것이다.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조직의 재정적인 건전성, 운영구조의 투명함, 문제해결력 등이 파트너십의 기준이 되도록 비영리단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업사회공헌담당자들은 “국내의 비영리단체들이 비슷한 활동을 하고 있어서 파트너십을 맺을 때 명성이나 평판 외에 다른 기준을 적용하기 힘들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부와 모금 생태계의 질적 성장을 위한 숙제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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