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그리스 시민들 “더 이상 졸라멜 허리도 없다”...채권단 긴축 요구에 아우성

입력 2015-06-1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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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채권단과의 구제금융 협상에서 벼랑 끝 전술을 펴고 있는 그리스 정부가 사면초가다. 국제 채권단은 구제금융 지원의 조건으로 연금 삭감과 세금 인상, 재정적자 일정 수준 유지 등을 요구하는 가운데 이미 생활고에 지친 시민들은 더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매월 700유로(약 88만원)의 연금으로 아내와 실업자 자녀 3명 등 5명의 생계를 꾸려간다는 파나기오티스 코우팔리디스 씨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채권단은 마치 무덤을 파고 있는 것 같다”며 “우리 연금 생활자들을 단명시키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의 연금은 채권단이 구제금융 지원의 조건으로 긴축 재정을 도입하기 이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채권단이 추가 긴축을 요구하고 있다는 소식에 분통을 터트렸다.

WSJ는 연금 삭감과 세감 인상은 겨우 입에 풀칠만 하는 저소득층에게 가장 큰 타격을 줄 것이며, 정치적으로도 부담을 준다고 지적했다.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3개 기관으로 구성된 국제 채권단이 도입한 긴축 조치는 재정적자를 줄이고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고, 그리스가 시장에서 자력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알려졌다. 그럼에도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채권단의 요구를 선뜻 받아들이지 않는 데에는 속사정이 있다.

그리스에는 2450억 유로의 구제금융 지원에 대한 대가로 제시된 조건을 지지하는 유권자 정치인이 거의 없다. 구제금융 덕분에 그리스는 5년간 채무불이행(디폴트) 없이 버텼지만 이는 오히려 그리스가 본격적인 침체에 빠진 원인으로도 지적되고 있다. 민간 부문의 고용이 급격히 줄고, 빈곤과 노숙자, 정신질환, 자살 증가 등 사회 구조에 문제가 생겨 구제금융 지원이 오랜 경제적 · 정치적 실책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당초의 기대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급진좌파연합(SYRIZA, 시리자)이 최대의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면서 전통있는 정당은 힘을 잃었다. 그러나 시리자는 거리 시위는 주도했어도 경험 부족 탓에 국정 운영에 적응하는데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부가가치세가 대폭 인상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타격을 받은 그리스 기업들을 더욱 위협하고 있다. 채권단은 적용 제외 품목이 과다한 부가가치세 제도를 단순화하고 일부 세율을 인상해 연간 세수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1% 높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IMF는 그리스의 세 부담이 이미 부담스럽다고 여기면서 부가가치세 인상 요구는 굽히지 않고 있다. 그리스 채무의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는 유럽이 채무 감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채무를 상환하는데는 추가적인 수입이 필수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혹독한 긴축 요구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그리스 시민들은 자국이 유로존에 잔류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GPO가 15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추가 긴축을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유로존 잔류를 희망하는 그리스 국민은 70%에 달했다.

한 시민은 WSJ에 “아들 한 명의 월급은 400유로 뿐이고 다른 한 명은 실업자여서 3유로 짜리 커피값도 아껴야 하기 때문에 위축된다”며 “아이들은 아직 건강하지만 가끔 우울해보여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 30대 남성은 WSJ에 “돈이 모이는대로 그리스를 떠나고 싶다”며 “적은 수입을 들고, 슈퍼마켓으로 갈지 아니면 공과금을 낼지 선택해야 할 때 기분이 울적하다”고 토로했다.

국제 채권단은 그리스에 2015년에만 30억 유로의 긴축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시리자는 더 양보를 이끌어내고자 향후 2년간 25억 유로 이상의 긴축을 제안했다. 그리스 경제 정치를 분석하는 웹 사이트인 매크로폴리스는 “정치 시스템이 황폐하고 경제가 비명을 지르고 사회가 혼미한 나라에서 자체적으로 짜내는 금액으로는 아마도 최대에 가까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로그룹은 18일 또 그리스와 구제금융 협상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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