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 정종 7년(1041) 5월과 14년(1048) 8월, 순종 1년(1083) 10월, 3년(1085) 5월에 기우도량을 개최했는데, 1085년의 경우 송악산 남쪽 건덕전(乾德殿)에서 7일간 열렸다. 고려 예종은 재위 2년(1106년) 법운사에서, 이듬해 5월과 1112년 5월, 1121년 5월 흥국사에서 기우도량을 열었다. 1121년 윤5월에는 왕사 덕연(德緣)을 궁으로 초빙해 비를 빌기도 했다.
1173년 4월에는 명종이 보제사(普濟寺)에서 용왕도량을 열었다. 그해는 1월부터 가물어 냇물과 우물이 말라붙고 전염병이 만연한 데다 아사자가 속출해 사람고기를 사고팔기까지 했다고 한다. 충목왕 2년(1346)에는 왕이 친히 내전(內殿)에서 기우도량을 베풀었다.
조선의 왕들도 기우제는 자주 지냈지만 국가 차원의 기우도량은 없어졌다. 태종실록 5년(1405) 5월 2일에 “비가 조금 내렸다. 기우하는 법석(法席)에 백저포(白苧布) 2필과 추포 106필을 보시했다”는 기록이 있다. 백저포는 모시를 뉘어서 하얗게 만든 옷감이며 추포는 발이 굵고 거친 베를 말한다.
그러나 이듬해 윤7월 3일 우의정 조영무(趙英茂)가 장의사(藏義寺)에 기우도량을 열자고 하자 태종은 “절에 가서 비 내리기를 비는 것은 고례(古禮)에 없으니, 어찌 다시 잘못을 저지르겠는가?”라며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