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칼럼] 도마에 오른 간병(看病)문화

입력 2015-06-2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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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삽시간에 한국사회를 긴장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던 메르스 확산의 주범으로 한국인 특유의 간병 문화가 도마에 올랐다. 메르스 감염률 세계 2위의 오명(汚名)을 기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던 주범으로, 실종된 시민의식과 더불어 우리네 특유의 간병 문화가 지목된 것이다. 일면 수긍이 가면서도 다른 일면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묘한 진실’이 자리하고 있음을 되새겨 보아야 할 것 같다.

실제로 가족 중 누군가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일단 가족들이 순번을 정해 병실을 지키며 간병에 임하는 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관행이다. 물론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 경제 상황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전문 간병인을 구하게 되지만, 그 전까지는 온 가족이 비상사태(?)에 돌입하게 된다.

적어도 한국적 가족문화의 맥락을 고려할 때, 부모님이나 자녀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마음 편하게 출퇴근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상생활을 해 나가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왠지 일이 손에 안 잡히는 건 기본이요, 행여 불효자가 되는 건 아닐는지, 아니면 평생 후회할 일 만드는 건 아닐는지 마음도 몸도 고단해지는 것이 상례다. 덕분에 부모님이나 자식들로 인해 병원 침대에서 쪽잠을 자 본 경험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병원 입원실이야말로 한국인 특유의 가족주의가 적나라하게 민낯을 드러내는 공간임을 그 누가 부인하랴. 조금만 유심히 관찰해 보면 누가 환자의 아들 딸이고 사위 며느리인지 쉽게 분별할 수 있다. 환자 곁에 어느 만큼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지 여부가 가족관계의 친소(親疏)에 따라 정교하게 설정되곤 하기 때문이다.

환자의 치료 방법을 결정할 때도 아들 딸과 사위 며느리에 따라 미묘한 입장 차를 보임은 물론이다. 수술을 할 것인지,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지, 대체로 앞뒤 안 가리고 환자의 입장을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경우가 자식 입장이라면, 수술비용도 계산하고 완치 가능성도 고려하며 보다 합리적 태도를 견지하는 경우는 한 치 건너 두 치인 사위나 며느리들 입장일 때가 대부분이다.

이 상황에서 진정 ‘불편한 진실’은 대형 병원이든 동네 병원이든 환자 보호자와 유기적 협조체제를 구축하길 원한다는 사실이다. 병원에서 가족 누군가의 간병을 경험해본 우리는 아무도 돌보는 이 없이 홀로 입원한 환자가 얼마나 불쌍하고 외로워 보이는지 익히 알고 있다. 매끼 식사 시간이 되면 환자의 밥을 챙기는 것은 당연히 보호자의 몫이요, 환자의 대소변을 체크하는 일도 대체로 가족의 책임이다. 이런저런 검사를 받으러 이동할 때마다 휠체어를 미는 것도 간병인이 해주었으면 하고, 환자가 약은 제대로 먹는지도 가족이 꼼꼼히 챙겨주길 원한다. 병실마다 가족이나 간병인을 위한 보조의자나 간이침대가 준비되어 있는 이유와 의미를 기억할 일이다.

가족은 물론이요 친족에 친구에 직장 동료에 지인까지 병문안을 가는 것 또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식 배려문화 중 하나 아니겠는지. 기쁜 일은 나 몰라라 해도 궂은일을 외면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저마다 시간을 내어 환자를 방문하곤 한다.

보기에 따라선 아름다울 수도 있는 간병 및 병문안 관행이, 이번 메르스 사태 하에선 무개념(無槪念)의 수준 낮은 문화로 치부되고 있음은 진정 유감이다. 차제에 우리네 특유의 가족주의에 입각한 간병 문화를 일방적으로 탓만 할 것이 아니라, 가족의 협조를 구할 수밖에 없는 병원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식 가족문화에 잘 맞으면서 동시에 메르스 사태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새로운 간병 모델에 대한 공론화가 따라주어야 할 것이다. 메르스 공포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간병인을 필요로 하게 되고 또 간병인이 될 수도 있는 초고령 사회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상황에서, 간병 문화는 강 건너 불 보듯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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